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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에서 한국은행·금감원·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 입사 시험은 '금융고시'로 불린다. 사진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요즘 대학가에서 한국은행·금감원·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 입사 시험은 '금융고시'로 불린다. 사진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송태호(성균관대 경제학과 3학년)씨는 한 달 전 선후배 8명과 함께 스터디 모임을 꾸렸다. 요즘 대학가에서 '금융고시'로 불리는 한국은행 입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졸업까지는 아직 1년 여가 남은 송씨가 모임까지 꾸려 일찌감치 시험 준비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한국은행 입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은 입사 시험이 고시로 불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행 입사 시험은 경제학 전공 시험들이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있는데다 선발 인원도 많지 않아 쉽지 않다"며 "학점 관리도 잘 해야 하고 전공 공부나 영어를 미리 꼼꼼하게 챙겨야하기 때문에 스터디 모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또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를 중심으로 이러한 모임이 몇 해 전부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활발히 모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입사에 스터디 모임은 필수"

대학가에 신종 고시 바람이 거세다. 금융권 진출을 원하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이 최고의 선망 대상이 되면서 요즘 이들 기관의 입사시험은 '금융고시'가 된 지 오래다.

사법·행정·외무 고시 등 정통 고시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일컫는 언론고시에 더해 금융권 입사시험에도 고시라는 타이틀이 붙은 셈이다.

한양대학교는 아예 대학 차원에서 '금융고시반'을 개설했다. 올 초 이 대학 경제금융학부는 국책 금융기관 입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시험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학과 홈페이지에 금융고시반 사이트를 만들어 각종 시험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 모임은 전체 4학년 학생 140명 중 3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정근씨는 "몇몇 뜻있는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지게 됐다"며 "교수님들이 제공해 주는 각종 시험정보와 기출 문제, 공부 방법 등을 서로 공유하며 입사 시험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들에도 치솟는 국책 금융기관의 인기에 비례해 다양한 스터디 모임이 유행처럼 꾸려지고 있다.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커뮤니티에도 금융고시와 관련된 온라인 모임의 활동이 활발하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국책 금융기관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 안정성 때문이다. 여기에 시중 은행이나 증권사 등 민간 금융회사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 연봉과 복지혜택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비결로 꼽힌다.

올 초에는 지난해 금융권 신입사원 합격자 중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에 동시에 합격한 이들이 대거 국책은행을 선택하면서 시중은행들을 울상 짓게 만들기도 했다. 시중은행은 최종합격자 10명 가운데 3명이 중도에 입사를 포기했으나 국책은행의 중도 포기율은 0%에 가까웠다.(아래 상자기사 참고)

송태호씨는 "취업할 때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면서 민간 은행보다 국책 기관을 선호하는 것"이라며 "게다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고 연봉이나 복지혜택도 좋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국책 기관으로 몰리는 금융권 진출 준비생들

금융고시 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감독원.
금융고시 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감독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취업 준비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입사 시험은 진짜 고시를 방불케 한다. 경제·금융 관련 전공 시험도 행정고시 재경직 못지않게 까다로울 뿐 아니라 선발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합격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한국은행의 경우 2002년 28대 1, 2003년 41대 1, 2004년 4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고 공인회계사, 미국 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들도 신입사원 공채에 대거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신입사원 공채에서 한국은행과 매년 신경전을 벌이는 '전통의 맞수' 금감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공인회계사나 미국공인회계사 등 고급인력도 매년 100여명씩 입사 시험에 지원하고 있다"며 "자격증 소지자들에게는 그에 따른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들 중 90여명이 탈락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대학가의 금융고시 열풍이 당분간 지속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수합병과 매각 이슈로 인해 시중 은행들은 고용 불안정에 노출돼 있어 안정적이고 구조조정이 거의 없는 국책 금융기관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우수 인재를 뽑기 위해 채용시기 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구직자들, 국책 기관이 "좋아 좋아"
시중은행 입사자 30% 중도포기... 국책은행은 중도탈락 거의 없어

올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앞두고 있는 국내 금융권의 지난해 채용은 어떤 양상이었을까. 지난해에는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사이에 둔 금융권 구직자들의 선호는 국책은행 쪽으로 뚜렷하게 갈렸다. 신입사원 공채 합격자들이 시중은행의 높은 보수를 마다 하고 안정성을 앞세운 국책은행을 선택한 것.

시중은행의 경우 최종 합격자 10명 중 3명이 중도에 입사를 포기한 반면 국책은행의 경우 중도 탈락자들은 거의 없다. 특히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에 동시에 합격한 이중 합격자들은 대거 국책은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은 67명의 합격자 중 사법고시에 동시 합격한 4명만이 합격증을 반납해 이탈률이 5.97%에 그쳤고 금융감독원도 역시 34명 중 사시합격자 3명만이 이탈하는데 그쳤다. 또 90명을 뽑은 산업은행과 16명을 뽑은 예금보험 공사는 한 명의 이탈자도 없었고 수출입은행은 30명중 단 1명만이 중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국내 리딩뱅크인 국민은행은 210명 중 무려 74명이 포기해 35%의 이탈률을 보였다. 업계에서 높은 급여 수준을 자랑하는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280명 중 79명(28.2%)과 80명 중 27명(33.8%)이 입사를 포기했다. 우리은행은 최종합격자 115명 중 12명이 합격증을 반납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시중 은행들의 이 같은 높은 이탈률에 대해 보수보다는 신분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직업 선택의 시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중도 입사 포기자의 상당수는 2~3군데 동시에 합격해 그 중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급여보다는 고용 안정성을 중요시한 결정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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