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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잠시 뜸한 사이 일터에 나간다. 내 일터는 네 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맨 아래쪽은 늦게 심은 옥수수와 들깨가 자라고 있다. 더 늦게 심은 토마토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두 번째 밭에는 고구마와 김장을 대비한 대파가 심어져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밭에는 온통 콩이 심어져 있다. 네 번째 밭에는 김장 김치 갈 곳을 남겨놓고 나머지 공간에 콩을 심어놓았다. 10여년 묵혔던 논을 밭으로 만들어 놓고 첫 번째로 심은 작물들이다.
전국각지에서 토종 콩을 구해왔다. 경기도 여주에서 구해온 메주콩과 검은콩, 강원도에서 구한 쥐눈이 콩, 논산에서 온 콩나물 콩을 심었다. 메주도 쑤고 청국장도 담고 콩나물을 직접 키워 먹을 요량으로 욕심껏 심었다. 내 년부터는 이 중에서 가장 잘 자라는 콩을 집중적으로 심을 작정이다.
그리고 산 아래 맨 위쪽에는 개집을 지어 놓았다. 닭장 옆에 옹색하게 자리한 진돗개 갑돌이 집을 얼마 전 이곳으로 옮겼다. 아내와 함께 전 보다 두 배나 큰 집을 만들었다. 갑돌이의 공간도 몇 배로 넓어졌다. 개울가에 서 있는 토종 밤나무와 산 아래쪽에 자리한 재래종 밤나무에 줄을 묶어 길게 연결해 놓고 거기에 개줄 고리를 달아 자유롭게 오고 갈수 있도록 해줬다.
갑돌이 집을 산 아래 쪽으로 옮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콩 밭 지킴이로 삼고 싶어서였다. 콩밭은 짐승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심을 무렵에는 이미 비둘기들에게 한바탕 수난을 당했고 이제는 노루와 토끼들에게 수난을 당할 차례다. 며칠 전 노루가 콩밭을 다녀갔다. 노루가 가장 좋아하는 먹을거리 중에 하나가 콩이다. 한번 맛들이면 두고두고 찾아와 작살을 낸다.
처음에는 노루에게 따로 내줄 요량으로 맨 위쪽 밭 가장자리에 콩을 심었다. 하지만 노루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아래 위 밭 할 것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콩 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밭을 일군 자리는 본래 노루의 영역일수도 있을 터였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손바닥만한 콩 밭을 죄다 노루에게 상납한 적이 있다. 그때는 도시를 오가며 밥벌이를 할 때였기에 노루에게 다 내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시에 기대 해왔던 밥벌이를 거의 놨다시피 했다. 이제 우리 네 식구는 밭에서 더 많이 의지해서 생활해야 한다. 노루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선택이 갑돌이를 보초로 세우는 일이었다.
갑돌이는 처음 며칠 동안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낑낑거렸지만 지금은 예전의 집에서 지내는 것 보다 더 좋아 보인다. 줄을 길게 묶어 놓았으니 훨씬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갑돌이 집 옆에는 맑은 개울이 흐른다. 언제 어느 때고 목을 축일 수 있다. 집 앞으로는 계룡산 봉우리들이 훤히 들어나 있어 풍광 또한 기가 막힌다. 녀석이 개 팔자로 늘어져 득도 할 만큼 좋은 명당자리다.
갑돌이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던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그런다.
“아빠 나도 이런 집 하나 지어줘.”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에 갉아 먹히고 있는 콩밭을 메다가 심심찮게 무당벌레들을 보았다. 콩밭에 천적이 생긴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콩께나 심어봤다는 온갖 사람들은 내게 농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경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화학 비료를 줘야 한다고 할 때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10 여 년 동안 농약 한 방울 없이 잘 지내온 땅의 힘을 고집스럽게 믿었다.
내 고집만큼이나 맨 땅에 심은 콩들은 화학 비료는 물론이고 퇴비도 전혀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희망이 보인다. 풀을 뽑아 놓은 자리에는 간혹 지렁이도 보였다. 벌레에 갉아 먹히고 있는 콩잎 또한 조만간 무당벌레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무당벌레 녀석들이 해결 못 해도 상관없다.
오후에는 네 번째 밭에서 일했다. 네 번째 밭 가장자리에 귀퉁이가 찢겨진 큼직한 고무다라를 묻어놓았다. 야외 똥수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똥통을 묻어 놓기만 하고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었다.
집 뒤 대나무 숲에서 굵은 대나무를 골라 베었다. 대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철사와 밧줄로 엮어 똥통에 쪼그려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두 개의 대나무 묶음을 고무 다라 양옆으로 얹어 놓았다. 거기에 턱하니 두 발을 오려놓고 쪼그려 앉아 똥 폼을 잡아 보았다. 왼편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멀리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비온 뒤 끝이라 산자락에 구름이 걸려 있다. 어떤 골빈 놈들은 똥수간에 금칠 은칠 다 한다지만 이만큼 화려한 똥수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싶다.
밭에서 나온 먹을거리를 고스란히 밭으로 되돌려 놓고자 만든 똥수간에는 두 가지의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도 밭에 손쉽게 인분을 내기 위해서다. 집 화장실의 인분을 밭으로 퍼 올리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야외 똥수간에서 볼일을 보고 그 위에 풀을 뜯어 놓으면 나중에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었다.
밭에 똥수간을 마련한 또 하나의 목적은 밭작물을 지키기 위한 영역표시다. 뭇짐승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똥오줌으로 확실하게 영역표시를 해 두고자 한 것이다. 노루 녀석들이 내 영역 표시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돌이까지 보초로 세워놨으니 밭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었다.
대충 똥수간 일을 마무리 할 무렵 장맛비가 대지를 흥건하게 적시듯 땀이 온몸을 쓸어내렸다. 힘에 붙인다. 몸뚱아리는 힘들지만 머리는 맑아진다. 머리가 맑아지니 기분이 좋다. 땀 범벅된 몸을 통째로 밭 옆으로 흐르는 작은 폭포수에 풍덩 담근다. 시원하다. 쾌적하다. 폭포수를 역류해 훌쩍 공중으로 날아갈 듯하다.
이렇게 기분 좋게 살아도 되는가 싶다가 단 한 푼의 돈도 되지 않는 밭에 매달린 내 자신을 본다. 밭이 내게 아무런 것을 원하지 않고 있듯이 나 또한 밭에 원하는 게 없다. 서로 조건이 없으니 좋다.
하지만 나는 밭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처자식과 딱 먹고 살 만큼이다. 사람들은 그만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부린다.
자본의 벽을 뚫고 자급자족의 길을 걷겠다며 대책 없이 시작한 밭일이다. 생활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다시 자본의 벽 앞에 서 있다. 자본의 벽은 도무지 뚫을 수 없는 거대한 은산철벽과 같다. 나는 자본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폭포수에 집중한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낙수치는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접는다. 생각은 생각을 낳기 마련이다. 생각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지금 땀 흘려 일하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땀 흘리면 그만한 대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대가가 적으면 적은대로 땀 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즐겁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땀을 흘리고 그 대가를 바라며 고통스러워한다면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살아 있는 모든 것들도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고통을 당할 것이다. 내 머리위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폭포수가 바다에 닿아 있듯이 내가 내는 마음자리는 모든 것과 맞닿아 있다. 자본의 논리와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땀 흘린 만큼 뭔가가 되돌아 올 것이다. 내 안의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훔씬 젖은 물기를 적당히 짜내고 어둑어둑한 밭을 등지고 내려오는데 갑돌이가 눈에 잡힌다. 갑돌이가 나를 본다. 고개 들어 뭐라고 월월 짖는다. 나 또한 짖듯이 갑돌이에게 말한다.
“그려, 너두 편하구 좋지?”
언젠가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답잖은 시 한수를 적어 보았다.
고랑고랑 사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밭을 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돈벌이를 제껴놓고
이른 아침 해 뜨기 전
삽질하고
돌 골라내고
쇠스랑질로
고랑 만들고
땡볕 들면
시원한 개울물 옆구리에 찬 사랑방에
늘어지게 한숨 자고
늦은 오후
다시 밭에 나가
삽질하고
돌 골라내고
콩 심고
비둘기떼 파먹다만 콩
노루가 힐끔거리는
검은 콩, 메주콩, 쥐눈이콩, 콩나물콩
철철 넘치는 개울
다 떨어진 고무신 탈탈 털고
흙발 씻겨 돌아와
처자식과 어울러
뭐 재미난 거 없을까
궁리하다 밤잠 잔다.
다시 새벽녘
산 아래 밭에서
하루 두 차례 땀범벅,
시원하게 멱 감는 기분으로 콩밭 메다.
산 아래
오로지 밭을 메다
문득 문득
불쌍한 중생,
그냥 한 줌 흙이나 다를 바 없다싶어
기분이 참 좋다.
저만치 날아가는
새들의 흔적 없는
날개 짓으로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