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로입니다. '만토'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그것은 인공 도시입니다. '강물이 흐르던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네'가 아니라 '저기 물이 흐르게 할테니 가서 사시오'입니다. 만토의 시민들은 모집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 안에 갇힙니다. 그리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다가 묻습니다.
이 도시는 가상의 도시야, 가짜 도시란 이야기지. 그럼 나는? 이 가짜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물론 나도 가짜입니다. <가상도시백서>의 인물들에게 정체성이란 그저 몇 줄의 컴퓨터 데이터 혹은 몇 장의 서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늘 두 가지 일을 합니다. 가짜 일(표면적인 직업)과 진짜 일(모종의 국가계획을 위해 비밀리에 주어진 임무).
사람들은 가짜 일을 하는 상대방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늘 의심합니다. 정말 저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결합은 요원한 일입니다. '진실'은 통제소인 시청에만 있는데, 이 시청의 명칭이 '거울탑'입니다. 거울은 비추되 속을 보여주지 않고, 받은 것을 돌려주되 자기 것을 내주지는 않습니다. 진실은 거울 속에 갖혀 있습니다. 아무도 서로 정말 누구인지 모릅니다. 사실 나도 내가 정말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고싶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기계화된 사회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박동하는 심장을 가졌고, 그 심장의 피는 늘 뜨겁고 붉습니다.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알고싶습니다. 외부에 대한 체념은 사실 표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아무도 정말 체념하지는 않고, 내가 누구이며 내 욕망이 누구의 것인지, 또 이 욕망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끝없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담배갑속에 비밀 쪽지를 넣고 음지에서 불법적인 일을 의뢰합니다. 아닌 줄 알면서 기대하고 거짓인 줄 알면서 믿습니다.
'스노우 화이트'라는 술집에 모인 여섯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사실 가상도시 '만토'의 시민들은 이미 한번 죽은 사람들입니다. 제각기 목적이 있어서 이 도시의 시민이 되기를 자원했지만, 가상도시의 시민이 되고나서 그들은 그들 역시 '가상'시민이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 중의 몇몇은 여기에 끌려 이 도시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뽑혔고, 만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폐쇄와 가식의 도시인 만토의 시민입니다.
술집 '스노우 화이트'에 한 여자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여섯 사람들의 삶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그 여자는 거울탑에 살고있고, 사실 이 여자 자체가 거울입니다. 그 여자가 정말 무얼 하는지, 정말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섯 사람은 그 여자에 비친 자기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되쏘인 자신의 이미지를 보면서 묻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고 있는 여기 나는 누구인가.
물론 대답은 없습니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여섯 사람은 독백처럼 자신의 생활을 진술합니다. 하지만 진술할 뿐입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누군가는 파멸의 길에 접어들기도 하지만 변하지는 않습니다. 여섯 사람들 중 아무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는 생은 변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울이 변합니다. 그 여자, 거울탑에 살고 있는 그 여자가 변합니다. 사랑해서는 안되는 거울탑 위층의 남자를 사랑해버린 그 여자가 변합니다. 그 여자는 그 사랑 때문에 자기가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진실을 궁금하게 했고 그 어두컴컴한 허위와 은닉의 내부에 불을 밝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만토에서 추방됩니다. 이 여자가 여섯 사람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균열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여자 스스로 이미 균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만토의 균열이었고 결국 만토시민들의 균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추방됩니다. 발목이 잘려 불구가 된 채로.
1세계, 2세계, 3세계라는 식의 세계 구분과, 북한과 남한을 연상케하는 제국/공화국의 구분 그리고 통일국가로서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연합국의 존재와 그 상징도시로서의 가상도시 '만토'의 설정은 이 소설을 현실과 굉장히 닮은, 그러나 현실에서 약간 엇나간 공간에 던져놓습니다.
그 공간은 현실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한 공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카프카와 헉슬리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고, 때로는 폴 오스터를 생각케 합니다.
가상도시 만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실세계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한 가지입니다. '가상'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가상도시 만토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는 다르지만 충분히 닮았습니다. 여섯 사람 각각의 이야기는 사실 현대인 내부의, 외부에 대한 여섯 가지 투사일지도 모릅니다.
| | 이신조 작가에 대해 | | | |
이신조 작가는 1998년 ‘현대문학 신인공모’에 단편 <오징어>가 당선돼 스물다섯의 나이로 등단했습니다. 다음 해 <기대어 앉은 오후>가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고 2002년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2004년 장편소설 ‘가상 도시 백서’를 출간했습니다. 최근 중단편 8편을 모은 소설집 <새로운 천사>를 새로 내놓았습니다.
*도서정보(사진 좌측부터)
<기대어 앉은 오후>, 문학동네, 6500원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문학동네, 8000원
<가상도시백서>, 열림원, 9500원
<새로운 천사>, 현대문학, 9,000원
/ 이익재 | | | |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평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