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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발표에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발표를 ‘보복’으로 규정했고,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성재씨도 ‘정치적 의도’를 거론했다.

더 나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또 다시 국민의 정부, 국정 개혁의 일꾼들에게 치욕과 수모를 주려 하느냐”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정원 발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조간의 태도는 신중하다. 음모론을 펴는 측의 주장과 이를 극력 부인하는 청와대의 주장을 동시 중계하고 있다. 조간의 중계 내용은 이런 것이다.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미림팀과 같은 조직은 없었다”는 전 국정원 과학보안국장의 말을 전했다. 지금도 불법 내지 편법 감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로 전하는 기사 말미에 실린 이 말은 음모론을 펴는 쪽의 주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미림팀은 김덕 당시 안기부장조차 재구성 사실을 몰랐던 사조직(김기삼 전 국정원 직원의 주장)이었지만 과학보안국은 국정원의 공식 라인에 편재된 조직이었고, 합법 감청을 주임무로 하면서 제한적으로 불법 감청을 했는데(국정원 발표) 어떻게 국정원 과학보안국의 감청을 더 문제시하는 상황을 만들었느냐는 주장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또, 통신비밀보호법의 공소시효에 따라 안기부 미림팀원들은 면죄되는 반면에 국정원 과학보안국원들은 처벌 대상이 되는데, 결국 현 정부가 이런 상황을 연출 내지 방조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음모론은 “슬쩍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왜 까발렸느냐”는 불만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반문하고 있다. 김만수 대변인은 “청와대가 도청 공개를 덮거나 부풀리거나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말했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이참에 털고 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국정원 발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발표 직후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야당 공세의 과녁이 된 상황을 거론하며 스스로 목을 죄는 음모를 꾸밀 수 있었겠냐고 되묻고 있다.

팽팽히 맞서는 두 주장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두 주장 모두 정황에 기대고 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음모의 특성상 그것이 진행 중일 때는 밝혀지기 어려운 법이다. 혹여 음모가 있었다면 그건 시일이 지난 후 결과에서 추출되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 또한 음모와 필연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확증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음모가 개입돼 있는지, 그리고 음모의 내용이 뭔지를 규명하려 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다만, 국정원 발표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해봄으로써 국정원의 발표가 어떤 성격을 갖는 것인지는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안기부 미림팀에 이어 국정원 과학보안국의 불법 도감청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여론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론이 이렇게 재편되면 득을 보는 곳은 어디일까?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 몸담지 않은 정치세력들이다. 범위를 더 좁히자면 지난해 4.15 총선에서 대거 약진한 신진세력들이 그들이다.

이런 유・불리 상황은 특별법이 제정돼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이 공개될 경우 더 명징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신세력이 구세력의 구태를 질타하면서 정치개혁 요구를 들고 나오고, 여기에 국민 여론이 가세한다면 정치권은 세대교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또 하나 눈여겨 봐야 할 사안은 시점이다. 국정원 발표 이후 야당들은 특검제 실시를 더욱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곤 하지만 여권이 그 정도의 방안에 기대 야당의 특검제 요구를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여권으로선 특검제를 주고 특별법을 받는 카드를 선택할 공산이 커 보인다.

만약 이런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특검제와 특별법의 결과물은 언제 쏟아질까? 야당들이 특검의 조사 기한을 180일 정도로 잡고 있는 점, 또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특별 기구도 조사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그 시점은 대략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특별법이 위헌 소송에 휘말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경우 특검 발표와 특별기구 발표가 순차적으로 나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내년 하반기에 불법 도감청 파문 제2라운드가 전개된다면, 또 제2라운드가 정치개혁 요구와 맞물려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면 그 역류는 어디로 흐를까? 주목할 점은 내년 하반기에 개헌 논의가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줄기차게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의 무시 전략에 밀려 그 논의 시점이 뒤로 밀릴 공산이 크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지금 시점에서 예견할 수 있는 흐름은 여기까지다. 불법 도감청 파문과 개헌 및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맞물려 돌아갈 공산이 매우 크다는 점, 또 불법 도감청 행위 및 도감청 내용 연루 여부에 따라 그 논의 주체가 큰 폭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일단 예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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