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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칼을 든 손에 힘을 주었지만 앞에서 달려온 사내들은 오히려 장판수를 피해 돌아가서는 이리저리 몸을 피해 흩어진 사내들을 향해 칼과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의 사내들에게 순식간에 제압 당한 사내들 중 몇몇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무기를 내던지고 꿇어 앉아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했다.
“장형! 괜찮으시오?”
장판수가 어둠 속에서 살펴보니 다름 아닌 차예량이었다. 계화를 따라 암문으로 무난히 숨어 들어온 차예량은 사람들을 이리저리 나누어 보내어 장판수를 찾아내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처음 찾아낸 것은 시루떡에게 맞아 뻗어 있는 두 명의 보초였다. 즉, 장판수가 처음 본 사내들은 바로 차예량 일행이었던 셈이었다. 차예량은 항복한 사내들을 한 곳에 몰아놓고 소리쳤다.
“네 이놈들! 네 놈들은 도대체 뭘 하는 놈들인데 이런 짓을 꾀하느냐!”
장판수가 피 묻은 칼을 들고서는 차예량 앞으로 나섰다.
“내가 조금 사정을 하니 심문하갔소.”
장판수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의 목 밑에 칼을 쑥 들이밀고서는 소리쳤다.
“여기 성안에 너희들 패거리가 얼마나 되네?”
사내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하...... 한 백명 정도 됩니다.”
“거짓말 말라우. 이 넓은 성을 겨우 백 명이 어떻게 장악한다는 거네?”
장판수는 단숨에 사내를 베어죽일 것만 같은 몸짓으로 칼을 쳐들었다. 사내는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비명과도 같이 소리를 내 질렀다.
“저, 정말입니다! 내 말을 잘 들어 보시오소!”
장판수는 쳐들었던 칼을 다시 사내의 목젖에 갖다 대고서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래 한 번 말해 보라우.”
사내는 목 밑의 칼날이 두려워 침조차 제대로 못 삼킨 채 버캐가 낀 입술로 주절거렸다.
“원래 성안에 약간의 병사와 잡부, 승병 등 천 여 명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잡부와 승병들 중 다수가 우리 사람들이라 병사들을 속여 약을 탄 술을 먹인 후 모조리 잡을 수 있었고 쉬이 성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겁니다.”
사내의 말은 시루떡이 말한 바와 별다를 게 없는 내용이었다. 장판수는 병사들이 잡혀있는 곳을 캐물었고 사내는 순순히 온조왕의 사당에 사람들이 갇혀 있노라고 가르쳐 주었다.
“지금 데리고 들어온 자들이 몇이나 됩네까?”
장판수의 질문에 차예량은 영문을 모른 채 대답해 주었다.
“한 오십 여명 가량 되오.”
장판수는 총탄에 맞은 배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시루떡을 가리켰다.
“두 명은 저 자들 성 밖으로 데려나가 잘 치료해 주고 나머지는 날 따르라우. 지금부터 성을 되찾을 것이니 말이네.”
사실 병력도 많지 않거니와, 다소 고압적이고 제멋대로 보일수도 있는 장판수의 태도는 신중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기분이 나빠 옥신각신 거리며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성에서 나왔을 수도 있었지만 차예량은 순순히 장판수의 말에 따랐다.
“장형의 뜻대로 하겠소이다.”
장판수는 차예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병사들이 갇혀 있다는 온조왕의 사당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내래 언제부터 장초관에서 장형이 되었습네까?”
장판수의 퉁명스러운 말에 차예량은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냥 절 아우라 부르시고 말을 놓으소서. 그게 서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보면 약삭빠른 말 돌림 같이도 들릴 수 있었지만 장판수는 괜히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장형이라......! 그 말이 낯설어서 그랬네! 그건 그렇고 성에는 어떻게 들어왔네?”
“궁인인 계화가 장형과 같이 드나든 문이라며 암문을 알려주더이다.”
장판수는 순간 고개를 들어 구름사이로 슬며시 내비친 달빛을 올려다보았다. 얼떨결에 이를 따라 달빛을 바라본 차예량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장판수의 시야는 어느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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