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시작된 '쓰레기통 치우기'도 전시행정이나 다름없다.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1~8호선에 놓여 있는 1149개의 쓰레기통을 모두 치우기로 했다.
지하철역에서 쓰레기통이 사라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3월에도 서울지하철의 쓰레기통이 일제히 치워졌지만,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쓰레기통을 다시 설치하라는 여론이 거세어졌다. 결국 2004년 9월 1일 서울지하철공사는 다시 쓰레기통을 설치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다시 쓰레기통을 치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에 쓰레기통을 치운 이유는 '쓰레기통이 폭발물 유기 장소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테러범이 폭발물을 설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지난 7월 7일 영국 런던의 지하철 폭발 테러 등으로 우리나라도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8일 MBC <아주 특별한 아침>에서는 아나운서와 리포터가 나서서 환영을 뜻을 비치기도 했지만, SBS는 "자판기는 그냥 놔두고 쓰레기통만 없애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등 대부분의 언론은 비판적 의견을 내놨다. 누리꾼들도 "쓰레기통이 없다면 다른 방도를 찾을텐데… 선반에 자연스럽게 가방 올려놓고 내리면 어쩔 것인가(tonyyas)"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더니… 테러범이 한국에 왜 오도록 꼬리쳐서 시민들 불편하게 하냐(youknow123)" 등 비난 여론을 쏟아내고 있다.
자판기는? 의자는?
만약 쓰레기통이 문제라면 약간이라도 '구멍'이 있는 물체는 모두 철거해야 한다. 자판기나 의자 밑도 위험하다. 무엇보다 테러범이 테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지하철의 어떤 공간이라도 폭발물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쓰레기통에만 집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철제 쓰레기통에 폭발물을 넣으면 사상자가 줄어든다고 하니 테러범에게 쓰레기통은 최적이 아닐 수도 있다.
테러는 쓰레기통 없이도 일어날 수 있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쓰레기통이 없으면 불편하다. 아침마다 넘쳐나는 무료 신문이며 자판기에서 나오는 종이컵과 음료수 캔은 어떻게 하나. 쓰레기통 철거를 시작한 8일부터 지저분해진 지하철역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그럼 그 쓰레기를 치우는 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민은 지하철에 넘쳐 나는 쓰레기로 불편하고 당국은 테러 대비도 모자라 쓰레기 정책까지 세워야 할 판이다.
요란하게 쓰레기통 철거를 한다, 대테러대비책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이것 말고 테러에 대한 정부의 '또 다른' 대비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들이 불편과 공포, 위협을 견디고 감수하는 것만이 한국의 테러 대비책인가.
'테러방지법' 그만 노려라
테러에 대응해야 할 국정원은 테러방지법 제정만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 제정 또한 순탄치 않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아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 테러 용의자의 금융거래·통신이용·출입국 관련 정보의 수집을 위해 직접 조사를 허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 규제 및 금융정보 수집 등을 요청할 수 있으며, 유사시에는 군 병력 지원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협은 의견서에서 "테러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권한남용 및 인권침해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민단체도 테러방지법이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 및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고 국정원의 권한 확대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범죄인 취급하고 감시를 강화해 인권 침해를 낳을 소지가 커 국제적으로 봤을 때도 반인권적이며 반민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테러 방지는 현재의 국정원법으로도 충분하다. 국정원법에는 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관련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불법도청 의혹에 휩싸이면서 그 신뢰가 추락한 국정원의 현 상태를 봤을 때 적극적으로 테러에 대비할 수 있을지, 그 대비책을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근원적인 원인을 막지 못한다. 끝없는 악순환을 불러올 뿐.
지하철 쓰레기통에 국민 목숨 맡겨야 하나
물론 불특정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살인행위이다. 하지만 왜 한국이 테러 대상국이 되었는가를 따져 보면 문제의 근원은 '파병'으로 이어진다. 지금 이라크에 가있는 3200여명의 군인이 소속된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 있을 명분이 없다. 일부에서는 병력을 줄이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4월, 1년 내 이라크 주둔 병력 5500명을 철수하고 1만3500명의 파병 병력을 8500명 선으로 줄인 영국도 연이은 테러를 당했다.
명분 없는 전쟁에서 손을 떼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테러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래야 지하철역 쓰레기통에서까지 테러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이 희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 테러가 발생할 위험성은 테러단체의 경고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으로도 충분하다. 체계적인 대테러 대비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이라크 파병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국회는 연장 동의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국민들의 목숨을 맡길 것인지, 그 테러 대비책 수준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