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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가 너무 심하다.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 여부를 두고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극과 극을 오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5일 검찰이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동아일보>가 전한 '수사 불가' 논리는 이른바 '독수독과론', 즉 "도청 테이프는 불법 증거이므로 이를 근거로 수사에 나서는 것도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겨레>는 오늘 검찰이 도청 테이프 내용을 수사하는 데 법리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대검 연구관들이 법리적 문제를 검토해 5일께 검찰총장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골자는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독수독과 이론은 미국에서도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위법 수집 증거도 위증죄 처벌 등에 실제 사용되고 있다 … 위법 수집 증거를 수사의 단서로 삼는 것도 허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불법 도청 내용을 근거로 법원이 수색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허용되는 주 법원 판례도 있는 만큼 수사 반대 논리가 되지 못한다."

내용이 180도 다른 보도가 나온 이유를 알 길은 없다. 두 신문 모두 익명의 검찰 관계자 입을 빌려 보도한 점에 주목하면 두 신문이 검찰 관계자의 비공식적인 말을 과잉 해석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할 수 있지만 두 신문은 확신에 차서 보도를 했다.

두 신문이 전한 기사의 강도는 매우 셌다. <동아일보>는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 불가 입장을 전하면서 "최종 확정했다"는 단정적 표현을 썼다. <한겨레>는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에 법리상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두 신문 모두 기사 수위를 한껏 끌어올릴 '믿음'이 있었다는 얘기다.

전혀 상반된 보도가 나오게 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선 두 신문의 기사 안에 숨어있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시점.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에 법리상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가 검찰총장에게 제출된 시점은 '5일께'다. '검찰 고위 간부'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를 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말한 시점은 4일이다.

다시 말해 검찰이 법리 검토를 마치기도 전에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 '불가' 입장이 언론에 흘러갔다는 얘기다.

<동아> "내용 수사 불가 최종확정"... <한겨레> "검찰, 법리상 문제 없다는 결론"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단서는 주체다. <동아일보>에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를 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말한 사람은 '검찰 고위 간부'다. '고위 간부'가 어느 선까지를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 보고서 내용을 미리 파악할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검찰 고위 간부'가 대검 연구관들의 보고서 내용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면, 또 자신의 지론이 '독수독과론'이었다면 '절대 불가' 입장이 언론에 흘러간 현상에 대검 연구관의 보고서 내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역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한겨레>가 전한 보고서의 내용은 전언을 기초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 내용을 전한 검찰 관계자가 보고서 내용의 일부만을 부각해 전달했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는 건 아니다.

<한겨레>가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려 보도한 내용은, 미국 등지에서 '독수독과론'에 이론을 제기하는 여러 사례가 있는 만큼 '독수독과론'이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 반대논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반드시 짚어야 하는 또 다른 측면, 즉 그럼 '독수독과론'은 완전 폐기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오히려 검찰 관계자의 발언 맥락을 보면 '독수독과론'이 도전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폐기된 건 아니고, 따라서 해석의 여지는 넓다는 뜻이 깔려있다.

두 신문이 모두 익명의 관계자의 비공식적인 말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한 만큼 무엇 하나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모습보다 훨씬 격렬한 양상으로 검찰 내부에서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두 신문의 기사 내용 중 후순위로 밀린 이런 사실들에서 그 일단이 감지된다.

<동아일보>는 도청 테이프 내용을 수사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전하면서도 'X파일'은 예외라고 보도했다. 274개 도청 테이프 내용은 수사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했지만 X파일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겨레>는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에 법리적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다고 전하면서도 검찰 관계자의 이런 말도 덧붙여 보도했다. "내용 수사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검찰총장이 이르면 이번주 안에 수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심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신문 보도대로 '확정'되고 '결론'이 난 사안이라면 빚어지지 않았을 현상, 그리고 흘러나오지 않았을 얘기가 함께 보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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