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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언론, 정치권, 검찰까지 개입된 '검은 유착'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본말이 전도된 검찰 수사방향을 그대로 쫓아가면서 사태 본질을 흐리고 있다."



X파일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안기부의 불법도청과 새로 발견된 274개 도청 테이프 공개논란으로 흐르면서 정작 테이프에 담긴 97년 대선 당시 재벌과 언론, 정치권의 유착 등 불법행위에 대한 보도는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은 지난 5일 논평과 9일 보고서를 통해 "X파일 테이프에서 불법로비 당사자로 드러난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는 언론 의제 밖으로 밀려나고, 검찰의 수사방향만 쫓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동아는 '도청'에 초점... 중앙은 '홍석현씨와 삼성' 감싸기 나서

▲ 민언련은 10일 X파일 관련 권-경-언-감의 유착을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할 것을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가졌다. 사진은 중앙일보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유지향씨.
ⓒ 오마이뉴스 하성태
민언련은 9일 'X파일' 보도에 대한 신문모니터 보고서에서 경향,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의 보도태도를 분석하고 "사건의 한 당사자인 중앙일보를 비롯 많은 신문들이 도청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춰 '정·경·언 유착'의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앙일보의 보도행태를 '반쪽보도'라고 표현하면서 중앙일보가 도청테이프 유출 문제를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7월 22일 다른 신문들이 1면에 삼성과 언론, 재계, 검찰간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내보냈지만 중앙은 2면에 'YS때 안기부 불법도청-국정원, 진상조사 착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불법도청에 관한 내용만 보도했다. 또 불법 도청테이프 유출과정의 문제를 강조, 자사와 삼성에 쏠린 비난을 돌리면서 'X파일' 공개의 정당성을 깎아내렸다는 것.

같은 달 27일 1면 '불법 도청테이프 유출…드러나는 전모, 삼성협박 실패하자 방송에 흘려'라는 제목의 기사도 이번 사태를 중앙일보에 대한 부당한 공격으로 포장하려는 태도로 지적됐다. 중앙은 해당 기사에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테이프가 문화방송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연루된 사람들의 목표는 금품갈취"로 적시했다.

민언련은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주요 언론은 '도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정·경·언 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언론의 겸허한 자성부터 필요한 사안인데도 거대언론사의 반성은 기미조차 없다"고 일갈했다.

삼성 보도... MBC '적극' KBS '부족' SBS '외면'

▲ [표] 'X파일' 관련 방송3사 보도 분석
ⓒ 민언련
한편 민언련은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방송3사 메인뉴스의 X파일 보도태도와 관련, "삼성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MBC는 '적극' KBS는 '부족' SBS는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정-경-언-검' 유착 및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보도는 KBS 3건, MBC 5건, SBS 1건(전체 102건 가운데 9건, 8.8%)에 불과했다. 그러나 추가 도청테이프와 관련한 보도는 KBS 21건, MBC 22건, SBS 25건(전체 102건 가운데 68건, 66.7%) 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민언련은 "삼성을 중심으로 한 '정-경-언-검 유착'에서 벗어나 '도청테이프'에 매몰됐다"며 "보도 내용도 도청테이프를 둘러싼 '공개논란' '수사방법 논란' '안기부 관계자 동정' 등 검찰수사와 정치권 공방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추악한 커넥션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본질 흐리기' '물타기' 수사에서 눈을 돌려 사건의 핵심을 파헤치는 것이 지금 방송이 해야 될 일"이라고 평했다.

"언론은 최대 광고주 눈치 그만 보라"
[인터뷰]주요 신문·방송사 일인시위 나선 민언련 모니터위원

▲ SBS목동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찬씨.
ⓒ오마이뉴스 강현석
민언련은 10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권-경-언-감의 유착 실정을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해 줄 것을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가졌다. KBS, MBC, SBS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앞에서 열린 이날 일인시위에는 민언련 소속 각 언론매체의 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이 직접 참여했다.

조선일보를 모니터해 온 김원정(25)씨는 "조선일보는 자사 내용과 관련된 내용은 ○○일보로 처리하면서 자기 반성 없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초반엔 불법도청 문제와 로비 의혹을 비슷하게 다뤘으나 시간이 갈수록 물타기 보도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DJ나 노 대통령과의 갈등을 부풀리는 쪽으로 보도 방향을 전환하고 갈등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는 자신들도 권언유착의 당사자인 만큼 더 이상 발뺌하지 말고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대사에 대헤 공정하고 철저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 유지향(24)씨는 "중앙일보는 첫 X파일 관련 기사에서도 오직 불법 유출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지난 25일의 사설과 8월 5일의 기자 명의의 기사를 통해 뼈를 깎는 반성을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신들을 희생양이나 피해자로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석현 대사 관련 기사에 관해서는 "불법 로비 관련 기사의 경우 홍대사가 주미대사에 낙마하면서 6자 회담 진행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삼성 측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진정으로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다면 홍석현 사장과 관련된 보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조중동의 삼성 눈치보기... 독자가 바로잡자

동아일보사 앞에서 만난 송상윤(24)씨 또한 "도청이 본질적 문제가 아님에도 동아일보는 자본에 억눌려 삼성과 기아차 관련 보도는 외면하고 있다"면서 "삼성을 최고의 기업이라 칭하면서 삼성이나 이건희 사장에게 마치 살살 타이르는 듯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조중동의 삼성 눈치 보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면서 "보수 언론이 어쩔 수 없다면 시민단체나 독자가 직접 나서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SBS 목동 사옥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인 김동찬(26,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위원장)씨는 "SBS는 초기에는 삼성의 불법 로비 활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검찰이 274개의 도청 테이프를 확보한 이후에는 관련 보도 90% 이상이 불법도청 문제로 옮겨갔다. 이후 삼성의 로비에 대한 보도는 메인 뉴스에서 한동안 사라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 김씨는 "사안을 무난하게 따라가려는 '보신주의'"라며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90% 이상의 기자들이 삼성 관련 취재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SBS는 이러한 부담감과 광고주로서 삼성의 위치에 대한 압박으로 결국 묻어가기식 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하성태·강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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