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젖줄 지장샘을 찾아서
나무와 돌, 마을 한가운데에서 솟아나는 샘물에도 전설이 담겨져 있는 제주 땅을 두고 사람들은 ‘복 받은 자들의 터’라고 부른다. ‘복 받은 자들의 터’. 그 ‘터’의 신비로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발길에 부딪히는 돌부리에도 그 의미가 담겨져 있고,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돌에도 전설이 담겨져 있는 탐라의 문화는 늘 새로운 것을 눈뜨게 한다. 더욱이 자연 하나하나의 비경 속에도 그 전설이 숨겨져 있는 서귀포 70경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특히 서귀포 70경의 아름다운 비경 뒤에 진시황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을 보면 당시 중국이 한반도의 지혈을 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생명의 젖줄인 샘물에 읽힌 전설의 진원지를 떠나 보았다. 서귀포시 서홍동 119번지. 이곳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 주소도 아니고 산이나 들의 주소도 아니다. 그저 땅속에서 시원한 물이 쉼 없이 흐르는 지장샘의 주소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흥미로운 것은 '용이 태어날 땅'으로 지목 받아 진시황이 탐 낸 곳이기도 하다.
삶의 애환과 인고가 서린 샘물
지금에야 수돗물만 틀면 물이 꽐꽐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지만, 지난날 물이 귀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장샘의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물지게를 지고 먼 곳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추억을 더듬으라면 아마 제주인들에게 그 샘물의 의미는 삶의 애환과 인고가 서려있을 것이다. 그만큼 물이 귀중했을 때 샘물의 의미는 금덩이보다도 더 소중했었다.
서귀포시 신시가지 아파트에서 지장로를 따라 마을길로 접어드니 정승 집 대문 같은 문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위엄이 있어 보이는 대문은 두개의 돌기둥 위에 기와지붕을 하고 있다. '용이 태어날 땅'이라 하여 어마어마한 크기로 화려할 줄 알았는데 그저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다.
좁은 마을길은 겨우 승용차 한대가 지나 갈 정도. 지장샘 옆에 승용차를 세웠다. 지장샘 오른쪽에 세워진 표지석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을 꼬마 녀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표지석의 깨알 같은 글씨의 의미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전설. 그러나 그 전설 속에서 현실을 확인하는 작업은 그 자리에 샘물이 유유히 흐른다는 사실이다.
표지석의 내용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는 탐라에 인재가 태어난다는 풍문이 떠돌아 송나라 조정에서는 압승지술이 능한 호종인에게 탐라에 가서 십삼 혈을 모두 막으라고 명하였다. 호종인이 처음 남원군 의귀리를 경유하여 홍로에 있는 샘을 찾아 나섰다.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호종단이 홍로에 닿기 전, 어느 날 백발노인이 나타나 점심그릇인 행기에 물을 가득히 담아 소 짐바구니 속에 감추면서 “만일 누가 와서 이 물을 찾더라도 모른다고 해 주시오”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호종단이 나타나 농부에게 물었으나 농부는 모른다고 했다. 호종단은 근처를 헤매면서 물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여 자기의 술서를 찢어버리고 돌아가 버리자 농부는 백발노인이 시킨 대로 감춰두었던 물을 갖다 부으니 거기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 한다. 그래서 이물은 지혜롭게 감춰졌다고 하여 지장샘이라 부르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장샘만큼만 살라."
표지석의 글을 다 읽고 난 뒤 샘물 속에 손을 담가 보았다. 한여름에 얼음장 같은 냉기를 느낄 수 있다.
전설 같은 샘물의 흐름은 여름을 즐기는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한 풍경 속에 잠겨있다. 이들이 가난한 농부의 지혜를 알기나 할까? 웃통을 벗은 어린이 아랫도리를 벗은 어린이, 인형을 목욕시키는 어린이, 그러나 지장샘물은 이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이 솟아오른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적당한 양의 물이 유유히 흐르는 지장샘은 하류로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지장샘을 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장샘물만큼만 살라’는 속담을 전한다고 한다. 콸콸 흐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조금 흐르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일정량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횡재를 원하지도 아주 가난을 해지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한다는 뜻. 전설 속 속담은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농부의 지혜로 탐라의 물혈을 살려 냈다는 지장샘. '진시황도 탐을 냈다'는 지장샘에 서 있으니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샘물의 한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여느 피서지에 온 것 보다 더 시원함을 느낀다.
한국 명수의 한 곳
특히 이곳은 지난 1987년 한국자연보호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명수 100선 가운데 한곳으로 지정된 용천수이다. 하루에 용출되는 수량은 300-1000㎥. 지장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솟아나 서홍동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식수역할을 하는 물자원이다.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지장샘 옆에는 서홍동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과수원들이 밀집되어 있다. 비록 전설 속에 묻힌 지장샘은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길을 가는 나그네들의 쉼터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가난한 농부에 얽힌 전설의 발상지와 '용이 태어날 땅'의 관리가 너무 허술하여 자칫 마을 어린이 놀이터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주변의 관리 상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지장샘이 흐르는 하류는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주변에는 버려진 쓰레기가 너무 많아 한 농부의 지혜로운 전설을 더듬어 보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덧붙이는 글 | 지장샘은 서귀포시가 지정한 서귀포 70경의 한곳이며, 한국의 명수 가운데 한곳이다.
찾아 가는길은 제주시-서부관광도로-서귀포시-서귀포 주공5단지 아파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