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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7월 26일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7월 26일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수영
4차 6자회담이 3주간의 휴회에 들어간 가운데, 평화적 핵이용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장외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면서 평화적 핵이용은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2단계 회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는 10일(미국시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워싱턴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힐은 6자회담의 초점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와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복귀, 경제 및 에너지 문제에 맞춰져 있다"며,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첫째,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가 붕괴되자 며칠만에 NPT에서 탈퇴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쫓아내고, 과학적 연구목적으로 전력 생산용이라던 영변 핵발전소를 몇 개월만에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에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전반적인 합의는 북한이 핵에너지를 개발할 필요가 없도록 인센티브를 주도록 설계돼 있으며, 특히 한국은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북한 내 전력수요 상당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양의 전기공급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핵이 폐기되면 한국 주도의 에너지 지원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평화적 핵이용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대제안'이 미국에게 역이용 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이란의 경우에는 NPT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IAEA 사찰도 수용한 반면에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핵 연료봉의 외부 제공 및 폐연료봉의 외부 이전을 전제로 이란의 평화적 핵이용은 인정할 수 있는 반면에, 북한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논리이다.

넷째, 북한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밝힌 것으로써,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란과 북한은 다르며, 다른 만큼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논리이다.

끝으로, 경수로 역시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제기된 문제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근거로 출범 직후부터 경수로 사업 '불가'를 고수해왔고, 이는 제네바 합의 체제 붕괴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NPT 탈퇴의 원인 제공자는 미국

위와 같은 부시 행정부의 주장은 제네바 합의 체제 붕괴 등 상황 악화와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도외시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 자체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던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 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 이뤄진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했고,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경수로 사업의 폐기를 시사했었다. 또한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포함시켰고,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도 철회했다.

이 모든 일들은 2차 북핵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일어난 것들이다. 참고로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며 중유를 제공했었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제네바 합의 체제의 근간을 허물면서, 북한이 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NPT에서 탈퇴해 핵무기 제조에 나선 '결과'만을 문제삼는 것은 여전히 일방주의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중대한 '원인' 제공자는 바로 부시 행정부라는 것이다.

더구나 NPT에서는 자국의 최고 이익이 위협받을 경우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자신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위협하고 있고, NPT가 미국의 핵패권주의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2003년 1월 6일 이 조약에서 탈퇴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각) 휴가지인 텍사스 크로퍼드목장에서 경제보좌관들과 회의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며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보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지난 9일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각) 휴가지인 텍사스 크로퍼드목장에서 경제보좌관들과 회의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며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보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지난 9일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 백악관 홈페이지
'미래의 관점'에서 본 북한의 에너지 수요

부시 행정부는 또한 북핵이 폐기되면 남한이 200만 kw의 전력을 직접 송전할 것이기 때문에, 핵에너지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직접 송전 방식이 안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와 북한의 대남 종속성의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이 정도로 북한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전력을 비롯한 경제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된 북한의 현재 전력 수요는 470만 kw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북한이 자체 생산하고 있는 만큼, 나머지는 남한 등 외부에서 지원하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관점'이다. 북한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약 2000만kw의 전력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회생을 위해서도 470만kw로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석유 등 마땅한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약 400만톤에 달하는 우라늄을 이용해 에너지 생산율과 자급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해결할 수 있다. 경수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지만, 이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북한의 핵 폐기 대상에는 재처리 시설도 포함되고, 경수로 활동은 철저하게 국제 감시와 통제 하에서만 허용하면 된다. 경수로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소지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보유의혹 부시는 어떤 근거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보유 의혹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북한은 의혹을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고, 이번 1단계 4차회담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거듭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부시 행정부 역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란 역시 지난 13년 동안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우라늄 활동을 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제조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IAEA의 사찰 결과까지 무시하면서 "이란이 거짓말을 했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부정할 때에는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8월말 회담이 재개되면 북미간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에 모아진다. 북한은 핵 폐기 입장을, 미국은 관계정상화 추진 입장을 밝힌 만큼, 평화적 핵이용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면 다음 회담에서 원칙과 최종 목표를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포기할 가능성도, 미국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도 낮다. 2단계 4차회담에서도 공동성명 도출에 실패할 경우, 북미 양측, 특히 미국 강경파들 사이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좁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문제가 어려우면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기본이란,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는데 전적으로 협력하고, 미국은 이를 조건으로 북한의 핵이용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기본 정신이자 원칙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비핵화 선언과 NPT를 결합해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 선언은 핵무기 제조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의 보유를 금지하면서 "핵 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에 NPT에서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평화적 핵이용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과 관련해 이 둘을 결합한다는 것은, NPT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은 불허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조치로는 NPT에 복귀하고 강력한 검증체제를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타협안만이 6자회담의 좌초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인 요구를 철회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부시 행정부가 '평화적 핵이용 불허'라는 일방주의적 원칙을 고수하다가, 정작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게 합리적인 이성이 요구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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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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