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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들과 함께 산으로 산으로
아들과 함께 산으로 산으로 ⓒ 노태영
아들과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가까운 산골짜기를 가 봅시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할 수 있습니다. 시커먼 세월을 뒤집어쓰고 길게 누워있는 바위가 되어 거짓이 없는 아빠를 보여주면 아들은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들도 그 산골짜기를 찾아오겠지요.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삶의 교육입니다.

산골짜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하면서 남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소나무에게 미안하고 잠자리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대화입니다. 텔레비전 소리가 웅웅거리는 집안에서 하는 아들과의 대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나무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매미
나무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매미 ⓒ 노태영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갖고 산골짜기를 걸어가 보세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한 슈마허(Schumacher)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생태와 자연 속에서는 정말 작은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소중합니다.

커다란 은사시시 나무에 납작 엎드려 있는 매미를 보세요. 매미의 일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매미는 매미로 우화하기 위해 적어도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땅속에서 견디어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과 비교해보면 정말 엄청납니다.

우리는 작은 고통이나 힘듦에도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특히, 요즈음 아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데 아이들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의 아이들은 공부할 때는 정말 무섭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운동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치열하게 운동을 했습니다. 수업 중에 코피를 흘리는 학생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그 만큼 많은 노력과 정열을 쏟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는지 잘 모를 정도입니다. 도대체 미친 듯이 시간과 노력을 쏟는 생활이 없다는 말입니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평상시의 생활도 그렇고. 그저 앉아서 할일이 없이 시간만 죽이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목표를 갖지 않은 인생처럼 보입니다. 아마 현대 생활의 단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빠르고' '쉽고' '편안하게'라는 태도 말입니다. 바로 컴퓨터와 휴대폰과 텔레비전의 영향입니다. 굼벵이처럼 느린 생활이나 달팽이처럼 하는 일이 세월인 삶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조금만 검색창이 늦게 떠도 스트레스 받고, 통화 중에 연결이 끊어지면 신경질 내는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졌습니다.

텔레비전은 어떻고요. 아이들은 조용한 화면이나 느리게 화면 처리된 프로그램은 아예 보지를 않습니다. 아이들이 댄스뮤직에 열광하고 <내 이름은 삼순이>라는 드라마에 넋을 잃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빠른 스토리 전개와 카메라 슛팅(shooting)의 빠른 전환입니다. 색과 빛으로 만들어진 화면과 다양한 카메라 슈팅( till down, till up, dolly in, zoom in, cut, wipe)이 사용된 화면이 빠르게 바뀌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빠른 상황변화와 순간적인 인식이 아이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하얀 연습장을 꽉꽉 채워가면서 수학문제를 풀거나 영어단어를 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자율학습시간에도 끊임없이 휴대폰 자판을 무의식적으로 눌러댑니다. 그래서 '엄지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두개의 엄지손가락으로 일분에 200타가 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이런 학생들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방법도 바뀌어야 하고 교육의 목표와 교육의 이념도 바뀌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입니다. 숲과 시냇물, 들판과 농촌입니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죽으라고 악을 쓰며 울어대는 매미가 아니라 안도현 시인이 이야기하는 매미소리를 아이들이 들어야 합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산속에서 우는 매미는 진짜 사랑이 그리워서 우는 것처럼 들립니다. 마치 사랑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파트 근처 나무에서 우는 매미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산속의 매미는 시끄럽게 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뜨겁게 웁니다. 도시에서 들을 수 있는 매미소리는 또 다른 소음에 불과합니다.

은사시나무의 어린 새싹
은사시나무의 어린 새싹 ⓒ 노태영
은사시나무에서 돋아난 새싹입니다. 아름드리나무에 붙어있는 아기 손바닥만한 새싹입니다. 은사시나무는 이런 작은 새싹을 틔우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지난 추운 겨울동안 엄청 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 작은 생명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얀 눈을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겨울을 이겨낸 은사시나무를 생각해 보세요. 껍질에 은사시나무의 드러난 아픔을 볼 수 있습니다. '신비스럽다'라는 느낌만으로 은사시나무의 노력과 인내를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한 일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을 위해 거의 모든 인생을 바치신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단지 부모가 계실 때는 모르고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고 약해지시면 그 때 깨닫는 것이 우리네 인간들이지요. 그래서 공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고(樹慾靜而風不止 子慾養而親不待). 그래도 우리는 항상 후회하지만요. 후회할 걸 알면서도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일찍 깨우치고 남보다 일찍 길을 나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덜 후회할 것입니다. 산골짜기에 있는 길을 걸아가다 보면 이런 보편적인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들끼리 부대끼면서 얻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변할 리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들의 자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혜들입니다.

여름비에 함초로이 젖어있는 참나리꽃
여름비에 함초로이 젖어있는 참나리꽃 ⓒ 노태영
산길이나 낮은 들판에 피어있는 참나리꽃을 보세요.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기분 좋게 만드는 꽃입니다. 무리지어 피어있지 않기 때문에 천하지 않고 값어치 없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길다란 대공에 한 두 송이의 꽃만을 피우기 때문에 고고해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들꽃이나 들풀에 비해 참나리는 키가 큽니다. 그래서 멀리에서 보아도 잘 보입니다.

아이들도 산길을 걷다 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꽃에 비해 큼직한 꽃이 넉넉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도시의 아이들이 느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참나리꽃은 호랑이꽃이라도 합니다. 자세히 보면 호랑이와 비슷한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꽃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꽃을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단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아닌 꽃이나 식물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사랑의 대가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 곧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이 아니지요.

솔직히 사람에게 이런 사랑을 받거나,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이나 들을 많이 걷다보면 그런 마음에 드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마음이 그 만큼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온후해지기 때문입니다.

산길이나 들에 피어있는 꽃을 꺾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꽃을 좋아할 뿐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소유를 의미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보존'을 의미합니다. 사람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가슴에 깃들도록 산과 들에 자주 가야 합니다. 특히 어렸을 때 자연과의 호흡이 많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온 몸에 스며들도록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이고 이 글은 저의 블로그 www.cyworld.com/nty1004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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