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충칭에서의 3차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우스예샹 1호의 퇴락한 모습. 충칭시 문화국에 의해 세워진 표시석만이 여기가 임시정부 청사가 소재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충칭에서의 3차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우스예샹 1호의 퇴락한 모습. 충칭시 문화국에 의해 세워진 표시석만이 여기가 임시정부 청사가 소재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 모종혁
임시정부는 1940년 8월 치장에서 충칭 시내로 이사온 뒤 네 번을 더 옮겨 다녔다. 1,2차 청사가 소재했던 양류제와 스반제 터는 일본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데다 급격한 도시 개발로 임시정부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차 청사가 위치했던 우스예샹 1호는 오늘날 허핑루(和平路) 2항 5,6,7호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2층 목조건물의 형태로 남아있는 우스예샹 청사도 당시의 원형이 거의 훼손된 상태다. 건물 입구에 충칭시 문화국에서 세워둔 표지석만이 여기가 임시정부 청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임시정부가 우스예샹에서 머문 시기는 1년도 안 되지만 이 곳은 남다른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김구 주석이 <백범일지> 하권의 대부분을 우스예샹에서 집필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가 롄화츠로 이사한 뒤로도 우스예샹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근처에 사는 토박이인 동칭화(董慶華, 72)씨는 "우스예샹 건물이 지금은 주변 아파트들에 눌려 초라한 모습이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3층 집"이라고 말했다.

저우룽루 37호에 위치한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앞쪽은 상가로 변했지만 건물 뒤편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저우룽루 37호에 위치한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앞쪽은 상가로 변했지만 건물 뒤편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모종혁
충칭시 중심가인 제팡뻬이(解放碑)에서 서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인 저우룽루(鄒容路) 37호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가 남아있다. 현재 건물 전면은 웨이위안(味苑)이라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고, 뒷면은 식품회사가 사무실로 쓰고 있다.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은 인적 기반을 확대하고 선전활동을 위해서 1943년 일본과의 전선이 가까운 시안으로 총사령부를 이전했지만, 중국군과의 협력과 군사지원문제 해결을 위해서 지금의 저우룽루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에 징용됐던 청년들이 탈출하여 속속 충칭을 찾아오면서 광복군은 큰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광복군 청사가 위치한 저우룽루는 도심의 번화가로 충칭시는 이 일대를 대대적으로 재개발 할 예정이었다. 충칭시는 1995년부터 이러한 입장을 주중 한국대사관과 독립기념관 등 한국 관련기관에 전달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광복군 청사가 조만간 헐린다는 뉴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8월 10일 찾은 저우룽루 일대 낡은 건물들은 대대적인 수리공사로 고풍스런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웨이위안 식당의 한 직원은 "이 일대가 줄곧 헐린다고 소문이 나돌았는데 올해 초 구정부 지시로 건물 외곽의 미관 공사를 벌였다"면서 "앞으로 2~3년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