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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8·15 대회에 서울에 온 북의 조명애 무용수
ⓒ 이창기
최근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남과 북 작가들의 만남을 다녀온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씨가 북녘의 작가들이 남쪽에서는 왜 머리에 물을 들이고, 왜 그렇게 성적인 묘사를 자세히 묘사하는 연애소설만 쓰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말을 듣고서 민망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 말을 듣고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고 빨리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녘 동포들도 남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95년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에 복학해 보니 후배들의 머리가 형형색색 가관이 아니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몇몇 그런 경우가 있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잔소리 좀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친한 후배들에게는 "야, 우리를 그렇게나 무시해온 서양인들이 뭐가 좋다고 닮고 싶어 하냐, 한민족이면 한민족답게 살자. 무시해도 좋다고 굽실거리면 우리가 얼마나 같잖아 보이겠니" 이런 말로 논쟁도 좀 하였다.

그러나 웬걸. 후배들이 나를 구식탱탱먹은 사람이란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운동권이건 아니건, 어른이건 어린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 물들이는 것이 완전히 대중문화로 급속하게 퍼져갔다.

그러더니 양키문화라면 입에 거품을 무는 나의 기질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학원 강사 아내마저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머리를 할 때 아예 기본이 되어 버렸다.

머리에 물을 안 들이면 학생들에게 핀잔을 듣는대나, 어쩐대나. 나아가 뭐 기본 예의라는 등 어쩌고 저쩌고 끊임없이 쫑알거리던 아내는 요즘 학생들은 잘 가르치는 선생도 좋아하지만 예쁜 선생을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욱 경악할 일은 딸네미가 5살 되던 해에 엄마에게 블리치를 넣어 달라고 조르더니 기어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 몇 가닥을 새하얗게 해가지고 와서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을 보고 또 보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때서야 머리 물들이는 것이 얼굴에 색조 화장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몸 가꾸기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우리 딸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이유가 석유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머리 물들이기에는 서양 사람들의 머릿결 색깔과 비슷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서양인을 닮는 것이 세련된 미라는 사대주의적 관점도 사람에 따라서는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민감하고 새로운 시도에 누구보다도 과감한 우리 민족의 기질 때문에 머리 물들이는 문화가 이렇듯이 급속하게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머리 물들이는 것을 내가 결정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이런 새로운 문화가 영세한 동네 미장원 아주머니들의 소득을 조금이라도 늘려 준다는 것이다. 아기자기 예쁜 글씨로 머리 물들이는 상품을 써서 미장원 거울에 붙여 놓은 안내문을 보고 나는 고만 머리 물들이는 문화라도 있어서 미장원 아주머니에게는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북녘의 남녀모두가 머리에 물을 들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이를 일단 인정하고 왜 그런지 이해하려는 마음부터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연애소설도 그렇다.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왜 남녘에서는 이런 소설이 주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남녘에서도 가장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과 영화는 성적 묘사가 장황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도 북녘의 작가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북녘동포들을 믿는다. 이번 월드컵 축구 예선전에서 북녘의 선수가 패널티킥을 주지 않는 심판에게 분통을 터트리며 가슴으로 밀어젖히는 모습을 보고 "아! 저러면 안 되는데, 북이 호전적이고 경기의 규칙도 무시하고 성깔대로 밀어 붙이는 나라라고 모함하는데 이용당할 수도 있는데"라는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북한도 이제 과거의 적대국들과도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교류를 하고자 한다면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참을 줄도 알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도 들었다. 물론 고백하건데 '역시, 저런 당당한 기질이 있기에 초강대국 미국과 맞짱을 뜨자고 덤비지'라는 생각도 아니 들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의 이 걱정은 기우였음이 곧 드러났다. 북의 체육당국에서는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당당하게 지적은 하면서도 국제축구협회에서 내린 일본과의 무관중 제3국 경기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그렇게 비아냥거려도 국제기구의 결정을 북은 통 크게 받아들였다.

더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런 북한 체육당국의 결정이 나오자 심판 편파 판정에 대해 그렇게 분노했던 북한 동포들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따랐다는 것이다. 북녘 동포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저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북의 예술단이 남녘에 와서 공연을 하려고 하는데 그 강당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내리지 않으면 공연을 취소하겠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듣고서는 "왜 그런 무리한 요구를 했는가"라며 북의 예술단 단장을 지적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정동영과의 만남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녘의 관리들이 '남조선애들'이란 말을 쓰는데 그러면 안 된다며 안 보이는 데서도 존중해 주고 남과 북의 회담과 대화도 서로 대립하는 분위기에서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 이후 남과 북의 당국자간의 회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눈부신 성과들을 내오고 있다는 보도도 연일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을 잘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북녘동포들과 다른 남녘의 문화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분위기에서 잘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3년 워커힐에서 진행된 3·1민족대회 때 한 인터넷 사이트 기자가 이동하는 북녘동포들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가면서 질문을 했더니 "남쪽 기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라고 짜증을 내서 충격을 받고는 달랑 행사 취재 하나만 해가지고 와서 하소연을 했었다.

그것도 남녘과 북녘의 언론 체계가 다른 데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차이다. 따라서는 오히려 그렇게 여러 남녘의 언론사 기자들이 관심이 많이 보일수록 북녘에서 더 적극적으로 응해 준다면 그만큼 북녘의 마음이 더 많이 남녘에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2년 8·15 행사에서 북녘의 무용수 조명애씨가 남녘에 깊은 인상을 남겨 남녘의 광고에도 출연하게 되는 등 통일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인터뷰가 귀찮다고 조명애씨가 족족 거부했다면 남녘의 조명애 인터넷 카페에 올라갈 글이 뭐가 있었겠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해와 배려는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큰 성과를 낳게 한다.

물론 남녘에서도 북녘 동포들과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녘의 동포들이 왜 북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방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북녘 동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하루 빨리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북에 대한 정보를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절박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광복 60주년이자 원한의 분단 60주년이기도 한 8·15가 다가왔다. 오늘부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8·15대축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과 북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 행사가 진행되어 올 해를 통일원년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성과를 안아오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와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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