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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는 장판수의 삐딱한 태도와 대답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구태여 이를 탓하지는 않았다. 장판수는 그 길로 진지로 달려가 진중 의관이 상처를 돌보고 있는 시루떡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어떻습네까?”

의관은 자신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다행이 총알을 빼내긴 했으나 상처가 깊어서 곪기라도 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때 장판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최효일이 급히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

“장초관! 그간 고생이 많으셨소!”

지칠 대로 지친 장판수는 최효일을 맞이할 마음가짐의 여유가 없었지만 마음가짐을 추슬러 차분히 그를 맞이했다.

“장초관께서 하실 일이 많소! 오랑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우리 군사들은 우왕좌왕 하고 있기만 하니 심히 걱정이오!”

편히 쉬라는 말도 모자랄 지경에 일이 많다는 얘기를 들으니 장판수로서는 부아가 치밀어 오를 노릇이었지만 먹을 것도 못 먹고 잠조차 부족한 지경인지라 그런 내색조차 할 힘도 그에게는 없었다.

“여기서 눈 좀 붙이고 잠시 뒤에 얘기하면 아니되겠소?”
“편한 대로 하시구랴!”

최효일은 약간 못 마땅한 표정이었지만 피곤한 얼굴에 핏자국까지 군데군데 묻어 있는 장판수를 독촉할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조선군과 대치중인 몽고군의 진영에는 급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에 조선군의 진지를 공격하라는 건가?

보얀은 낡아빠진 초립을 쓴 덩치 큰 조선사람 하나를 앞에 두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거 완전히 네 놈들이 우리를 이용해 먹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조선 땅에서의 싸움은 이미 끝났다. 우리가 이토록 병력을 모아 움직이는 것은 저들을 공격하여 무찌르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일 뿐이다.”

초립을 쓴 이는 통역을 통해 말을 전해 듣고는 답했다.

“우리는 그저 지금이 제 때임을 알려주는 것일 뿐 반드시 공격하라고 하지는 않았소. 장군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신다면 굳이 우리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공격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나 행여 노파심에서 전하는 말일 뿐이오.”

행여 보얀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싶어 하는 말이었지만 보얀 역시 공격 시기를 늦추면 조선군이 전열을 가다듬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알아서 할 터이니 물러가게.”
“저...... 그리고 이것은 약소하오나 성의로 가져온 것입니다.”

초립을 쓴 사내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내어놓았다. 보얀은 입맛을 다시며 그것을 받고 슬쩍 열어보았다 안에는 누런 순금덩이가 들어 있었다.

“성의가 조금 부족하군.”

보얀의 퉁명스러운 말은 통역이 되지 않았지만 초립을 쓴 사내는 말뜻을 대충 알아들었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듭 굽실거린 후 물러갔다.

“전군에 알려라 새벽에 밥을 지어 먹고 조선군의 진지를 총공격한다. 싸움이 끝난 후 저 남한산성에서 잔치를 벌일 것이니라!”

몽고군의 진지를 빠져나온 초립 사내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나무 뒤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낡은 초립을 벗어 던지고 갓을 썼다. 사내는 다시 길을 재촉해 남한산성을 둘러 암문으로 들어섰다.

“다녀오셨습니까?”

암문 근처에는 두청과 서흔남의 일행이 모여 있었다. 두청을 본 사내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어찌하여 장판수를 놓아주었는가?”

두청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변명했지만 사내는 마치 몽고군의 진지에서 있었던 일의 화풀이라도 하는 양 큰소리를 친 후 물러갔다.

“씨도 없는 놈이 목소리는 우렁차구만.”

서흔남의 비아냥거림에 두청은 행여 사내가 들을 새라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주둥이를 조심하거라! 어차피 내일이면 모두 끝날 일, 오늘은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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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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