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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대학의 연구비 유용 문제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들의 놀라움은 다음 몇 가지 점 때문에 더욱 커진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업 중 하나라는 대학 교수가 벌인 일이라는 것이 첫째. 16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착복한 경우에서 보이듯 그 규모가 대단하다는 것이 둘째. 연구기자재 명목의 허위 영수증을 발급하는 식으로 큰 몫을 챙기는 한편, 제자들의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빼돌려 제 주머니를 불려왔다는 유용 방법의 파렴치함이 셋째다.
첫째 항목이야, 참된 명예의 가치가 실종된 지 오래인 사회 일반으로 시선을 돌리면 따로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대학이 350여 개나 되는 판에 일부 대학교수는 중등교사보다 못한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더욱 그렇다. 물론 '대학교수'라는 상징자본의 위력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조금도 덜해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유용 금액이 대단하다는 둘째 항목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일개 교수가 16억이니 5억이니 하는 돈을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비 관리 제도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004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20조를 돌파했다. 총 22조 1853억 원의 연구개발비가 쓰였고, 연구원 수 또한 21만 명에 이르렀다. 이 중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전체의 9.9%인 2조 2009억 원에 달한다.
대학 연구개발비의 상당부분이 공대 등에 몰려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대 들추면 99%가 걸린다'는 어느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 과장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에 맞게 연구비 항목을 조정하면서, 유용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엄정한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유용 방법이 파렴치하다는 사실이다. 물품업자 등과 짜고 사기극을 벌인 것도 기가 막히지만,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착복했다는 데 있어서는 말을 잊게 된다. 연구책임자인 대학교수가 거느리는 연구원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강의실과 교정에서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이요 '제자'가 아닌가.
앞서 말한 21만 명 연구원의 26%가 비상근이라는데, 자세한 수치는 없지만, 대학 내 연구원의 실질적인 비상근 비율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대학 내 연구원의 상당수는 대학원생들인 까닭이다.
'대학원생'이라고 했지만 이들 중 박사과정을 밟거나 수료한 경우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학생'과는 처지가 다르다. 그들 대부분은 가정을 꾸려야 하는 가장이요 사회인인 까닭이다. 박사 실업률이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인 상황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이들의 연구비는 곧 그들과 그들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는 생계비'에 해당한다.
이렇게 궁핍한 제자들의 생계비를, 그들의 '스승'이요 '지도교수'인 대학교수가 빼돌린다는 것은 끔찍하다 못 해 실로 잔혹한 일이다. 대학 내의 제자 성추행에 못지않은 심각한 범죄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대학 연구비 관리 제도의 개선만을 바라고 말 수는 없다. 대학교수들의 뼈를 깎는 자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대학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할 장기적인 대책 또한 수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대학들에서도 어느 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문제의 발생 소지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방안들을 사회 각계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모아져서 바람직한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보태고 싶은 것은, 개선책을 마련하는 우리들의 시야가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금번 연구비 유용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 사회를 꿰뚫고 있는 커다란 흐름의 나쁜 부산물이기도 하다. 그 흐름이란 무엇인가. 대학과 대학교수의 우수성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에만 매달리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 결과 연구비를 많이 따와야 훌륭한 교수로 인정되는 풍토가 만연하다보니, 연구비가 기형적으로 구성되고, 유치 경쟁이 뜨거워지며, 그에 소용되는 품값을 찾고자 하는 유혹에 교수들이 말려드는 것이다.
범법 행위를 두고 다른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우리의 대학이 진정 대학다운가 또한 잊지 말고 챙겨보자는 말이다. 산학협동도 중요하고 응용학문의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사회와 교수들이 경제논리의 수치놀음에만 지배되어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연구비 유용 문제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 우리나라 대학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 가지 징표기도 하다. 해서 더욱 씁쓸하고 부끄럽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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