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곤) 그룹 회장님은 두산의 전통인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 우리 때에 와서 깰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박용오 전 회장이 요구한 두산산업개발 계열 분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은 '형제의 난'과 관련 지난 7월 22일 기자회견에서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발언은 두산그룹의 전통인 '가족 경영'을 흐트러뜨린 박용오 전 회장의 처사를 용서할 수 없다는 뜻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의 원칙
두산은 재계에서는 드물게 가족 경영이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현대, LG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2, 3세로 넘어오면서 분화를 겪은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두산그룹은 가족 경영을 하면서 잡음이 흘러나오지 않는 기업 문화를 어느 자리에서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인화를 중시하는 가풍의 영향으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한 일들이 신속하게 집행되는 구조를 최고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두산그룹의 후계구도는 장자 승계를 기본으로 하되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맡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방식을 채택해왔다. 이는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회장이 강조한 '공동 소유, 공동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7월 21일 발생한 '형제의 난'은 두산그룹의 가족 경영이 포장에 불과했음을 보여줬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무리하게 진행한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 파국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3세로 오면서 남자 형제가 6명에 이르고, 4세로 내려가서도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형제들이 10여명 이른다. (그림 1 참조)
3세대인 박용곤, 박용오, 박용성, 박용만(서울 의대 교수인 4남과 이생 그룹 회장 6남 제외)이 그룹 회장을 돌아가면서 맡는다고 해도 4세로 넘어가면 갈등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어머니가 다른 두산그룹 5남 박용만 부회장과 6남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나이가 각각 50세와 45세로 조카인 4세들과 연배가 엇비슷하다. 두산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4세들간에도 경영권을 두고 갈등 조짐이 있다"면서, "공동 경영이란 원칙 자체가 유지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두산그룹 측과 박용오 전 회장은 상대편이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고 공격했다.
두산그룹은 "박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씨가 두산산업개발 인수합병을 시도했다"고 주장했고, 박용오 전 회장 측에서는 "5남인 박용만 부회장이 6남 박용욱씨가 운영하는 (주)이생을 앞세워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삼화왕관에 대해 인수합병을 시도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흔들리는 가족 경영 어디로?
현대는 2세로 넘어가면서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 사이에 '왕자의 난'이 벌어졌고, 이 사건 이후 자연스럽게 그룹 분화가 이루어졌다.
삼성 역시 신세계와 CJ가 일찌감치 분가해 기반을 잡았다. 공동 경영의 전통을 이어왔던 LG그룹의 구씨와 허씨도 LG, GS, LS로 그룹 분화를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재계에서는 가족 경영의 전통을 이어온 두산그룹 역시 '형제의 난'을 기점으로 그룹 분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잡음의 소지를 그대로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로 연결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정리하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박용오 전 회장의 장남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빚어낸 사건이지 공동 경영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면서, "이 일을 계기로 두산그룹 4세들의 결속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그룹 분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