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라는 책에서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며 교도소에서 여름나기의 괴로움을 이처럼 적었다.
교도소만큼 여름나기가 힘겨운 곳이 어디 있을까? 재소자들이 가장 괴롭다고 느끼는 순간 중의 하나는 바로 좁은 감방, 폭염 속에서 '인간 난로'인 동료와 살을 맞대고 있을 때다.
30도 웃도는 실내 온도... 동료는 '인간난로'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법무부 예산·결산심사를 모두 끝내고 난 뒤 최연희 법사위원장은 "내가 요구한 것 가져왔냐"며 다급히 법무부 교정국장을 단상으로 불러 세웠다.
이에 교정국장은 문서 한 장을 들고 나왔고 "서울구치소 36도·30도, 대구교도소 36.2도·31도, 안양교도소 36도·31도…"라며 전국 교도소별 실내외 온도차를 위원장에게 보고했다.
기온이 35∼36도에 육박하는데도 실내외 온도는 불과 5도 차. 이 정도라면 웬만큼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더위다. 최 위원장은 "아무리 죄를 지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조건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풍기 등 냉방기 설치 예산을 확충해서라도 재소자 처우 개선에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당부했다.
이번 국회는 각 상임위를 열어 정부 각처의 재정운용 적정성과 예산집행 실태를 점검하는 예산결산심사를 진행했다. 보통 국회는 정부의 예산을 깎으려 들지만 법사위는 교도소에 대해서 예산을 더 쓰라고 주문했다. 그만큼 여름날 재소자 처우가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선풍기조차 중앙통제.. 수감자에겐 '그림의 떡'
재소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000년 이후 주요 환경개선사업이 실시됐고, 이에 따른 예산집행도 이뤄졌다. 교도소 냉방시설에도 변화가 왔다. 이전에는 외부에서 기증한 선풍기를 사용했을 뿐, 별도의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지만 지난 한해 1억1400여만원이 책정되어 올해 전국 모든 교도소에 선풍기 설치가 완료된 것.
그렇다고 선풍기를 재소자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실내 온도가 일정한 수치를 넘겨야 전원을 켤 수 있는데 26∼27도가 넘지 않으면 가동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좁은 방에 10명 이상의 재소자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온도계가 가리키는 수치와 상당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소자들에게 선풍기는 결국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의 한 관계자는 "밖의 온도가 그리 높지 않은 날에도 재소자들이 더위 때문에 숨막혀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교도소의 더위나 추위는 재소자들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양교도소의 경우 1시간마다 10분 정도는 선풍기가 반드시 꺼진다. 위찬복 용도과장은 "지속적으로 선풍기를 돌리면 과열의 위험이 있고, 또 국가 예산을 절약한다는 차원에서 각 방의 선풍기를 중앙시스템에 의해 통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양교도소 내 온도 측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콘크리트 건물이고, 통풍이 잘 되지 않는 탓에 오히려 바깥보다 기온이 치솟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10명이 넘게 수감된 방에 할당된 선풍기는 대개 2대.
결국 이같은 환경은 옆 사람을 '열 덩어리'가 아닌 '인간'으로 느끼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영복 교수가 말한 '여름형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