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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을 배신이라고 한다면 반박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존재하되 대상은 영원할 수 없음에 반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일기를 쓰듯 자상하게 1인칭 화자의 입을 빌어 들려주고 있다.
화자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클로이와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가며 독자들에게 잊혀진 혹은 진행 중인 사랑을 환기시킨다.
가능한 모든 감정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사랑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그녀에게 갑자기 느끼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 과정의 내적 역학을 안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으며, 살아온 경험이라는 전거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그 말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도 없다. …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클로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긴장된 과정들이 묘사되고, 마침내 클로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화자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클로이는 화자를 위해 일찍 일어나 근사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는데, 화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잼이 없다고 괜히 심술을 부린다. 심술의 근거는 무엇일까?
완벽한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약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그녀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그녀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클로이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랐으면서도 막상 자신을 사랑하게 되자 클로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편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이 아닐까. 모든 다른 것과 다를 바 없이 사랑도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걷는다.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상처받고 덜 상처받는다.
결국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화자와 클로이도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데, 표면적으로는 클로이의 배신에 의해서 명백해졌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책임은 둘에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주어져 있다. 사랑은 자명하지 않지만, 화자는 성숙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숙한 사랑이야기에서는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뛰어드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나서야 그 물에 빠진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정치, 예술, 과학, 그리고 저녁에 무얼 먹고 싶은지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한 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은 상호 이해, 그리고 가정된 것이 아니라 확인된 유사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애매하고 모호한 감정들은 지나고 보면 사랑을 흉내낸 것도, 사랑이 아니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숙한 사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이르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배어 있는 이 소설은 신선했다. 채 익지 않은 사과의 신맛 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팍팍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연애소설을 만나기란 좀처럼 힘든 일이다. 매미소리를 대신하여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을이 와 있나 보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베개 삼아 연애 소설 한 편을 읽는 것도 휴식의 한 방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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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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