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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얀의 명령과 함께 몽고군의 깃발이 번쩍 들리고 뒤에 숨죽이고 서 있던 몽고의 기, 보병이 한걸음에 한 번씩 우렁찬 기합소리를 넣으며 서서히 몰려 나갔다.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조선군은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하느냐! 어서 대오를 바로잡고 저들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어라!”

최효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조선군은 신호를 보내기 위한 깃발조차 제대로 못 세울 정도로 어수선해 지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는 조선군의 코앞까지 서서히 다가간 몽고병들은 보얀의 명을 기다리다가 깃발이 들어 올려지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물러서지 말고 막아라!”

차충량이 활을 쏘며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이 충돌로 조선군의 허술한 전열이 일시에 붕괴되었다. 보다 못한 차예량이 창을 든 병사들을 몰고 가 밀고 오는 몽고병들을 닥치는 대로 찔러대었다. 장판수는 칼을 들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몽고병들의 다리를 베어 쓰러트렸다. 이러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조금씩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무기가 없으면 몽둥이와 돌이라도 들고 앞으로 나오라우!”

장판수가 이 빠진 칼을 내동댕이치며 더 이상 물러날 뒤에서 머뭇거리는 병사들을 향해 쇳소리를 질러대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져 있었다. 조선군이 빠져나갈 길은 이제 가파른 산등성이 밖에 없었지만, 이를 타고 올라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앞에 나선 보병들을 물려라. 기병을 모조리 투입하여 밟아버려라!”

보얀은 기진맥진한 조선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몽고병의 뒤쪽이 어지러워지며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냐?”

조선군과 대치한 앞쪽의 몽고병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조선 기병들이 편곤을 휘두르며 몽고병들을 짓밟으며 전진해오고 있었다.

“저 놈들은 어디서 온 것이냐!”

몽고병이 당황해하며 전열이 흐트러지자 잠시 숨을 돌린 장판수와 최효일은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병사들을 정돈해 반격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뒤쪽에 원군이 온 것 같소이다! 우리 조선군의 깃발이오!”

차예량의 소리에 병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몽고병들은 뒤 쪽의 조선기병에게 대응할 병사들을 내어보내느라 좁은 길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대로 뚫고 지나가는 거다! 모두 힘을 내라!”

조선기병을 이끄는 자는 바로 평안감사 홍명구의 휘하에 있던 별장 장훈이었다. 홍명구의 명을 받고 기병 이백 사 십 명과 보군 일천팔 백 명을 이끌고 어가를 구하러 갔던 장훈은 이미 조정이 항복했으며 홍명구는 금화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비통해 하며 남한산성 인근에 병사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남한산성에서 몽고병과 조선군이 큰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서는 급히 진격해 오게 된 것이었다. 몽고병들의 진열을 깨끗이 반으로 쪼개듯 지나간 장훈은 곧 병사들의 태세를 정돈하여 사기를 돋우느라 여념이 없는 장판수와 마주치게 되었다. 장훈은 단숨에 장판수를 알아보고선 말 위에서 호기롭게 소리쳤다.

“이렇게 큰 싸움을 벌이는 이가 누군가 했더니 장초관이었구려!”

장판수도 장훈을 성산산성에서 본 적이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과 함께 불현 듯 홍명구와 윤계남이 떠올라 마음이 서글퍼졌다. 한편 몽고병들은 조선군의 공격이 뜸한 틈을 타 어수선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습니다. 어서 병사들을 물려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합니다.”

토올의 말에 보얀은 손에 든 칼을 내동댕이치며 소리쳤다.

“이미 전쟁에 진 나라의 병졸들을 상대로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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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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