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니, 박꽃이 참 예쁘네요. 갑자기 박속 초무침이 먹고 싶네요.”
“그래, 박이야기 들어 볼래? 6.25동란 때 우리 식구들도 김해로 피난을 갔다가 보름달이 뜬 늦가을 밤에 집에 돌아 왔단다. 내가 제일 먼저 집에 들어섰는데, 집은 새까맣게 불이 타서 없어지고, 마당에 허연 해골들만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거야. 저 불쌍한 시체들은 다 어쩌지. 나는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대문간에서 오돌 오돌 떨고 있는데, 뒤늦게야 네 아버지가 와서 살펴보았지. 그런데 그것들이 다 우리 초가집 지붕에서 익은 박이 불에 타서 떨어진 것이었단다. 얼마나 놀랐던지….”
“맞습니다. 그때 우리도 참 많이 놀랐습니다.”
큰형님과 작은형님도 맞장구를 칩니다. 그래서 달빛을 받은 하이얀 박꽃이 더 서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바람아, 불어라! 대꾸(대추)야, 떨어져라!"
우리 고향집엔 대문이 없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가시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삽짝이 있었으나 낡아서 없어진 지도 3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대문이 있던 자리 옆에다 작은형님이 대추나무를 심었는데, 올해는 실하게 많이 열렸습니다. 추석을 조금 남겨둔 이맘때쯤 우리는 대추 한 톨을 먹고 싶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곤 했었지요. 그런데 기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큰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바람아, 불어라! 대꾸(대추)야, 떨어져라!"
"할배, 할배, 잡수이소."
"오냐! 에헴, 톨! 톨!"
더 많은 대추가 떨어지길 바라며, 우리는 온 동네를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습니다. 어른들은 수확을 앞둔 벼가 걱정이 되는 터라, ‘쯧’ ‘쯧’ 혀를 차곤 했습니다.
덜 익은 감을 주워 홍시를 만들어 먹던 그 시절
바람이 불면 좋은 일이 또 있었습니다. 무언가 주전부리를 쳐야할 나이에 먹을 것이 없던 그 때,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분 다음 날, 나는 다른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채 떨어지지 않은 눈을 부비며 감나무 밑을 살금살금 다니면서 떨 감을 주웠습니다. 더러 온전한 놈도 있었지만 대개는 떨어지면서 상처가 났었지요.
그놈들을 하얀 러닝셔츠의 한 귀퉁이는 입으로 물고 다른 귀퉁이는 왼손으로 잡고, 부지런히 감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불룩하게 배불뚝이가 된 그 포만감이라니! 동무와 우연히 감나무 밑에서 만나면 떨어져서 며칠이 지난 홍시를 반으로 쪼개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혹 떨떠름한 감을 입에 넣었다가는 서둘러 ‘퉤’ ‘퉤’ 뱉고는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지요.
덜 익은 놈들을 홍시가 될 때까지 그늘에 올망졸망 열을 지어 세워놓기도 하고, 더러 아무도 모르는 시냇가에 웅덩이를 만들어 담가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물에 넣어둔 놈(담은 감)은 신기하게도 하루나 이틀이면 떫은맛은 사라지고 달짝지근한 맛이 들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지요. 그러나 하얀 러닝셔츠가 감물이 들어 알록달록 변하면 엄니의 혀 차는 소리도 커져만 갔습니다.
집 앞 길가에 반시가 여러 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길가에 한참동안 쪼그리고 앉아 옛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감 사이에서 대추벌(말벌과 같은 종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 우리는 대꾸벌이라고 불렀음)이 쏘옥 고개를 내밉니다. 벌은 이리저리 부산하게 다니더니 마침내, 감의 깨어진 부분에 머리를 처박습니다.
“막내는 지금 밥 안 먹고 어디 갔냐? 성수야!”
여든 일곱, 어머니가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