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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병들은 큰 피해를 입고 남한산성에서 모조리 물러갔지만 이를 상대한 조선군의 피해 또한 막심했다. 4천의 몽고병과 3천의 조선군이 남한산성 앞 벌판과 산골짜기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는 광경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를 거두어 매장할 인력조차 없었다. 처참한 전장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헌 감찰 조부현은 금부의 병사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선 후 수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고 누워 있는 정경을 보고서는 벌컥 화를 내었다.

"대체 병마절도사라는 이는 무엇 하는 자인가! 막상 전란 때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가 전쟁이 끝난 판국에 어찌하여 이렇게 무리한 교전을 벌였단 말인가!"

부상을 입은 군관 하나가 다리를 절뚝이며 조부현에게 다가갔다.

"보아 하니 궁에서 나온 감찰관이신 모양인데 사정을 얘기 할 테니 저쪽으로 가 내 말을 들어보오."

조부현은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말을 경청했다.

"여기 병마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소이다. 남한산성에 있었던 초관 장판수와 의병대장 차충량, 차예량 형제, 그리고 종사관 최효일이 작당하여 함부로 교전을 벌였던 것이외다. 그들을 벌해야 하오."

필통을 꺼내어 그 말을 급히 옮겨 적은 조부현은 그의 이름을 물었다.

"저 따위의 이름을 알아 무엇 하겠습니까? 그저 이 일이 올바로 풀려 옳고 그름이 명확해졌으면 합니다."

조부현은 금부의 병사들에게 명했다.

"당장 장판수, 차충량, 차예량, 최효일을 잡아오고 병마절도사 서우신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서슬 퍼런 조부현의 명을 받고 금부의 병사들이 흩어져 이들을 찾았으나 막상 조부현 앞으로 온 이는 병마사 서우신뿐이었다. 조부현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서우신을 나무랬다.

"병사들이 중도에서 배회하며 가옥을 불사르고 부녀를 겁탈하여 노략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오랑캐들이나 다름없었다는 데 어찌 된 것이오?"

서우신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소이다.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이까?"
"비변사에서 이번 일을 두고 성상께 아뢴 말이외다. 정녕 그런 일이 없었소?"
"없었소이다."

조부현은 종이를 꺼내어 이름을 읽어 내렸다.

"장판수, 차충량, 차예량, 최효일, 이 자들이 병마사를 겁박하여 병사들을 움직인 것이오?"

서우신은 잠시 눈을 감았다. 불과 한 시진(지금의 두 시간) 전에 서우신은 그들을 불러 당부를 한 바가 있었다.

"이제 자네들은 어찌 할 셈인가?"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은 채 아무 말이 없는 장판수와 그 일행에게 서우신은 뜻밖의 얘기를 했다.

"이 일은 모두 내 불찰이네. 내가 모든 일을 감내할 것인 즉 자네들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게나."

최효일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병마사께서는 그저 저희들을 따라 온 것뿐입니다."

"따라오다니! 내 애초 그러지 않았나? 병사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떠나지 않을 것이라 했네. 내 자네들에게 해준 것이 없네만 이 일 만큼은 명확히 하고 싶네."

한 시진 전의 일이 스쳐 지나간 후 서우신은 눈을 번쩍 뜨며 또렷한 말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내가 시킨 일이오. 그 자들의 면면을 보시오. 하급관직이거나 또는 관직조차 없는 이들이오. 어찌 병사들이 그런 이들을 따르겠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이까?"

그때 조부현에게 달려온 금부의 병사들이 보고했다.

"아뢰오! 병사들이 말하기를 말씀드린 자들은 이미 난전 중에 모두 행방이 모연해졌다 하더이다! 지금으로서는 시신을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허! 이것 참!"

조부현은 조금이라도 죄를 덜 기회를 놓친 서우신에게 안타깝다는 눈짓을 보였지만 서우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25일 '의주에 부는 바람'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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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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