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일 계속되는 비가 내려 가을을 재촉합니다. 이젠 밤에 얇은 이불일망정 덮지 않으면 추워서 새벽잠을 깨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동녘의 하늘을 보면 태양마저도 올라오는 지점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저쪽 산머리로 떠올랐던 게 어느새 이쪽 산머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삼 계절의 바뀜은 하늘의 높푸름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미치도록 시퍼런 가을하늘이 연상되는 보기 힘든 파아란 하늘은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멀리 동녘 하늘을 바라보니 아마도 저 산이 조계산이지 않을까 싶네요. 비가 오다가 갠 날이라서 그런지 정말 멀기만한 산들이 무지 가깝게 다가옵니다. 산자락의 생김새를 보니 영락없는 조계산입니다.
하긴 며칠 전에 지리산 노고단에서 저희 동네 병풍산과 불대산을 봤습니다. 무등산도 보구요. 날이 좋은 때면 그렇게 멀리 있는 산들도 보이는 것이니 아마 조계산이 틀림없을 거 같습니다. 비가 내리다가 잠시 갠 하늘은 더욱 가깝게 우리 곁으로 내려옵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온 몸이
노래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파아란 하늘을 보기 위해선 우리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봄에는 이젠 지긋지긋한 황사로 뒤덮여 맑은 하늘을 보기가 정말 힘듭니다. 여름 또한 마찬가지여서 어지간해서는 먼 산이 가깝게 다가오질 않습니다.
그렇게 고운 날 아침 한 동네 사는 선배가 전화를 합니다. 마당에 위도상사화가 피었던데 혹 백양꽃 피었지 않겠냐고 한번 가보자고 합니다. 백양꽃을 보기 위해 벌써 3년째 같은 지역에 매번 갔어도 우리는 그 시기를 맞추지 못해 작년엔 겨우 지고 있는 백양꽃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백양꽃은 흔히 우리가 이야기 하는 상사화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사화가 가장 먼저 7월 정도에 피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붉노랑 상사화, 진노랑 상사화가 피어납니다. 영광 불갑사에 가면 진노랑상사화를 볼 수가 있죠.
이런 다음에 피어나는 꽃이 위도상사화라고 합니다. 같은 상사화인데 색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일반 상사화는 핑크빛인데 진노랑, 붉노랑은 말 그대로 노랑색이고 위도상사화는 하얀색입니다.
이 다음에 피는 꽃이 백양꽃입니다. 백양꽃은 주황색이 납니다. 백양사 인근 지역에 자생하는 우리 지역의 특산식물이랍니다. 이것 또한 알려지면 아마도 싹을 남기지 않고 처참히 벌채해 가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앞섭니다.
겨울에 파아란 잎의 끝자락에 손톱자국마냥 붉은 주황빛이 춘란의 복륜처럼 들어 있는게 백양꽃의 특징이기도 하고 구근이 흙 위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야만 꽃이 피는게 또한 이 꽃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옮겨 심어서 흙을 소복히 덮어주면 절대로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다음에 피는 꽃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꽃무릇(석산)입니다. 꽃무릇은 함평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에 아주 유명하죠. 그런데 이 꽃무릇은 우리의 자생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백양꽃은 백양사 인근의 여러 계곡에 자생하고 있는 데 반해 꽃무릇은 주로 절 주위에만 있어 절에서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백양꽃을 삼년만에 제대로 만나면서 기쁨이 앞서기 전에 걱정이 앞섭니다. 이 꽃 또한 그냥 그대로 자리하면 좋을텐데 약삭빠른 사람의 손길 닿아 저기에 온전히 있지 못할까 싶습니다.
다행히도 꽃 보고 나오는 길에 햇봄님이 반가이 맞이하며 으름잇꽃 차를 한봉지 주시면서 초소의 경계병처럼 당당히 지키고 있어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저 미치도록 푸른 하늘처럼 어여쁜 모습으로 다가온 백양꽃밭에서 마음은 벌써 풍요로운 가을을 달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