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4명 중 한명이 독살설에 휩싸였다. 어느 왕조나 독살설에 휩싸인 왕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 왕조에 나타난 이러한 수치는 그 정도가 심하다. 당시 사람들이 왕을 죽인다는 것이 대역죄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조선 왕들은 독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왜 그들을 죽였던 것일까?
역사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데 맹활약하고 있는 이덕일이 이번에는 조선 왕들의 독살설 의혹을 다룬 <조선 왕 독살사건>으로 대중에게 또 한번 역사와의 만남을 제공하고 있다. 제목이나 다루는 내용들만 본다면 <조선 왕 독살사건>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역사 속의 의혹들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조선 상류층의 문화와 생각을 알 수 있는 귀한 정보들로 가득한 '알짜배기' 역사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사대부와 왕권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좋은 해설서는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지은이가 언급한, 독살설의 의혹을 남긴 왕들은 인종, 선조, 효정, 현종, 경종, 정조, 고종에 소현세자와 사도세자까지 포함하면 9명이다. 더군다나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일각에서 언급하는 예종까지 포함시키면 무려 10명이다. 조선의 왕이 27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조선 왕 독살사건>에서 언급된 왕들과 소현세자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대동소이하다. 의혹을 남길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순간이 정상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거나 시체가 독살의 의혹을 남기는데도 얼렁뚱땅 그것을 처리하려고 했다거나 하는 방식들이다. 심지어 신하들이 수전증을 앓고 있는 어의를 들여보내거나 맥을 짚을 줄 모르는 어의를 들여보내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으로 독살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즉 왕을 독살한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있어야 독살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 책에서 다룬 왕들은 모두 그러한 대상을 지니고 있었을까? 지은이는 답을 간단하게 알려준다. '그렇다'라고 말이다.
흥미진진하게 역사의 의혹을 풀어갈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에게 지은이의 이러한 태도는 아쉬움을 남기겠지만 <조선 왕 독살사건>의 값어치는 그것이 아니다. 책의 진정한 값어치이자 즐거움은 이 간단한 답에 대한 탐구에 있다. 더불어 여기에서 조선 상류층의 생각과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귀한 단서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것이다.
지은이는 조선의 왕권을 동일 시대의 일본에 비하면 강력하지만 중국에 비하면 미약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변 국가와 비교할 때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은 왕 혼자가 아니라 '사대부'와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믿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은 조선 초기만 해도 가능했다. 왕과 사대부의 뜻이 맞물려 별다른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의 신분사회와 문화는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적인 예가 선조가 궁궐을 떠나자 백성들이 궁궐에 난입해 노비 문서를 관리하던 장예원에 불을 지르거나 도망치던 어가를 막아섰던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국왕을 정점으로 사대부들이 다스리는 조선의 국가 통치 체제는 사실상 임진왜란으로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알다시피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을 지우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실상의 체제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나라는 존재하고 있다. 당연히 나라의 기강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독살설은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유포되고 독살설의 의혹을 만들어낸 이들은 더 이상 국왕을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당수를 으뜸으로 여기며 노골적으로 왕을 무시하기에 이른다.
지은이는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독살설의 배후에는 그 임금을 반대한 정당이 있고 숙종 즉위 때를 제외하면 임금이 죽은 후 어김없이 그 당이 집권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특정 정당이 특정 임금과 정치적 갈등이 극대화되었을 경우 임금을 갈아치우는 것을 해결책으로 선택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또한 임금이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한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였음을 뜻하는 동시에, 신하들이 특정 임금을 배척할 수도 있었음을 뜻한다. 이를 신하가 임금을 선택했다는 뜻의 '택군'이라 하는데, 국왕 독살설은 그야말로 이 택군의 결과였다." '본문' 중에서
흔히 알려진 택군은 쿠데타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택군이다. 반면에 독살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택군이었다. 물론 사대부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의아스럽게 여겨질 수 있겠으나 국왕을 절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으며 자신들의 당수의 뜻을 더욱 신봉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코 의아하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조선 왕 독살사건>은 독살을 택군의 결과로 설명하며 그 밑바탕이 되는 붕당정치를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왕과 사대부의 관계, 임진왜란 이후 변화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알려주면서 거시적으로 조선 상류층의 문화를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시대 순으로 각 왕들의 독살설을 다루며 그것들이 변화하는 것을 다뤘기에 갈수록 낭떠러지로 향하는 왕과 사대부의 관계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것은 흥미진진한 역사로의 탐험과도 같다.
더불어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당한 뒤에 왜곡되어지거나 잘못 알려진 왕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조선 왕 독살사건>이 주는 즐거움이다. 쓸데없는 논쟁의 대명사로 뽑혔던 현종 시대의 '예송논쟁'이 갖는 의미나 고종이 일제에 억압받고 있을 때 조선 상류층이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 등이 대표적인 것들인데 이것들 또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조선 왕들의 독살설을 둘러싼 의혹과 수수께끼를 가지고 조선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조선 왕 독살사건>. 이야기꺼리와 역사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알짜배기 역사서이자 흥미로운 해설서로 제 몫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