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일본 작가 중에 한명인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수에 젖은 듯 무겁고 진지하면서도 딴에는 가볍고 경쾌한 문체를 통해, 에쿠니 가오리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깔끔한 내용전개를 통해 우리의 심금을 자극한다면, 요시모토 바나나는 어찌보면 그들에 비해 가벼운 소품과도 같은, 하지만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감성적이고 친밀감 넘치는 표현으로 단숨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감수성 넘치는 베스트셀러 작가라 할 수 있다.
하루키와 가오리를 각각 끝없이 물결치는 검푸른 바다와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호수에 비유한다면, 바나나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며 흘러내리는 강이라 칭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이러한 바나나가 펼쳐내는 새로운 감각의 여행소설집 <불륜과 남미>가 오랜 기다림 끝에 출간되었다. 표지 그림과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탱고의 본고장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해 와인의 도시 멘도사를 거쳐 이과수 폭포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빚어낸 7편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남미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색채를 듬뿍 머금은 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불륜'이라니? 실제 남녀의 그런 관계를 지칭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경험, 바로 남미의 낯선 나라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바나나가 몸으로 느낀 열정적이고 짜릿한 경험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나나라는 애칭만큼이나 그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참으로 기발하고 발칙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는 이가, 아르헨티나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여행한 나처럼 아르헨티나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어쩌다 같은 장소에 들렀을 때, '아, 그 얘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이쯤에 있으려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에서
바나나의 바람과도 같이 독자들 또한 이 특별한 아르헨티나 여행을 통해 그녀가 느낀 발칙한 경험, 불륜 속으로 시나브로 빠져들 수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과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장점과 아르헨티나로 여행하고픈 충동을 억누르기가 벅찰 만큼 힘이 든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공존할 만큼, 바나나의 의도는 100% 적중.
이는 일반적인 여행에세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설이란 장르가 갖고있는 이야기체 구성이 여행이란 행동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낯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의 출장, 그곳에서 받게 되는 불륜 관계의 애인이 죽었다는 그의 아내로부터의 장난 전화를 통해 애인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복잡하고도 담담하게 표현해 낸 <전화>.
점쟁이 외할머니가 죽게 된다고 예언해준 1998년 4월 27일, 그날을 아르헨티나에서 맞게 되는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삶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마지막 날>.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륜 관계의 남자와 함께한 여행을 통해 갈색 탁류의 이과수 폭포의 장관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표현해 낸 <창 밖>이 바나나가 이 소설을 쓴 의도가 십분 발휘하고 있는 만큼이나 특별하게 와 닿는다.
투박하기에 오히려 남미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고 생각되는 하라 마스미씨의 그림과 아르헨티나의 절경을 멋지게 담아낸 야마구치 마사히로의 사진 또한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절대 놓쳐서는 안될 특별한 선물.
지구상으로 우리나라의 정 반대에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아르헨티나다. 그만큼 지리적, 문화적으로 낯설 수밖에 없는 아르헨티나가 이 소설 속의 인연 이후 다시금 접할 수 있을지는 아쉽지만 미지수. 그렇기 때문일까? 첫 번째 단편 <전화>의 마지막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멋진 추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두 번은 있을 수 없는 묘한 추억이란 것만은 분명했다."
바나나가 소개한 아르헨티나의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은 조만간 타히티 섬을 다녀와서 쓴 '타히티 이야기'로 옮겨와 보다 새롭게 펼쳐질 예정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특별하지만 짧은 여행이 못내 아쉽다면, 혹은 타히티 섬으로의 새로운 경험을 마냥 기다리기가 어렵다면, 그리스의 외딴 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낭만적인 유럽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와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름다운 배경을 통해 전개되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를 다시금 접해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민음사 / 1만원)
[역사]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 – 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최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더불어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는 가운데,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다"란 말이 새삼 가슴을 저며오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하지만 일본의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이 쓴 몇몇 역사서들이 그나마 아쉬운 데로 위안을 주고 있다.
기존에 소개되었던 <미래를 여는 역사> <세계의 역사 교과서> 등이 쟁점 위주, 혹은 일본 근현대사에 편중되어 서술한 데 반해, 이번에 출간된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맞물리는 주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곡되고 편향된 일본의 기존 역사서들에 속에서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려는 일본의 참된 시민들의 모임인 역사교육자협의회의 노력이 낳은 진정한 '대안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 / 1만6천원)
[인문] 생각의 역사 – 허만원, 군지 사토시 외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쉽사리 다가서기 어려운,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고대시대부터 철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삶의 문제를 고민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 <생각의 역사>는 이처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당당하게 맞섰던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과 리스먼과 같은 현대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얼마나 현실적인 학문인가를 알려 주는 동시에 우리가 왜 철학의 방식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그들의 대표 저작 100편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단순한 해제가 아니라 읽을거리로서도 충분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저작물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개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해설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출간 의도.
즉, 우리에게 필요한 지적 소양의 산실인 이 100권의 철학서들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수준을 넘어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각 책들의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고 그 사상의 핵심을 명확히 간추려 보여주고 있다. (이른아침 / 2만5천원)
[경제] 2020 미래한국 – 곽수일, 김민규 외
21세기의 비약적인 첨단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예측 또한 힘들고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불안심리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며 관련 예측서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발간된 <2020 미래한국>은 단순한 예측이나 인상비평 수준에 그치지 않는, 좀더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우리의 미래상을 그려볼 필요를 통해 각 분야의 전문가 30명에게 '우리의 미래란 과연 어떨 것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하여 그에 대한 의견들을 종합, 구성한 책이다.
따라서 IT는 물론이요, BT(바이오 기술), NT(나노 기술), 여성, 환경, 통일,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할 뿐만 아니라, '김 과장'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2020년 어느 하루를 인트로 삼아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독자로 하여금 손쉽게 그려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각 장의 끝에는 희망찬 미래상과 함께 독일과 미국 등에서 조망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 또한 소개함으로써 보다 전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문예측서로 손색이 없다. (한길사 / 1만5천원)
[예술]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 카림 라시드
카림 라시드는 작년 3월 COEX에서 열렸던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를 통해 친환경 미래주의 주거공간인 L사의 'Xi 퓨처 하우스'를 소개했었고, 올 초에는 고급 카드의 대명사로 상반기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H사의 신용카드를 디자인함으로써 국내에도 꽤 정평이 나 있는 21세기 뉴욕의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혁신가이다.
이 책은 라시드를 포함한 13명의 디자인 전문가들이 모여 그의 작품에 관한 미학적 의의를 논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출시된 이래 3백만 개 이상이 팔린 <가르보> 쓰레기통을 비롯하여, 인테리어와 가구, 조명과 포장 분야를 넘나드는 대표 작품들의 사진, 컨셉트, 스케치 등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서서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일상생활의 '진짜 이슈를 다루는 예술가'로 자부하는 카림 라시드.
'좋은 물건은 시장을 편집하며, 또한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로 집약되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늘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의 세련된 디자인의 세계에 마음 놓고 빠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메시스 / 3만5천원)
[에세이] 다섯 평의 기적 – 정남구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자연과 한통속이 되어 살아가는 도시 농부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 에세이로, 지난 해 봄부터 <한겨레 21>에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이란 제명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작품이다.
시골이나 산행을 통하지 않고서는 흙조차 구경하기 어려운 아스팔트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새삼 접해보는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 삶 속의 자연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의 저자 김혜원씨가 말하는 '척박한 농촌의 삶을 자연과의 교감으로 승화시킨 지혜, 식물식생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 등을 모두 담은 추억의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는 평가 그 자체에 다름 없다.
단순한 주말농장이나 전원 생활을 예찬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연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려줌으로써 흙만이 느끼게 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책. (리더스북 / 1만2천원)
[어린이] 붕어빵 한 개 – 김향이
임진강 근처 마을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할머니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는 송화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을 그려냈던 2003년 느낌표 선정도서 <달님은 알지요>의 작가 김향이 선생님의 신간 창작동화집이 나왔다.
이번 작품 <붕어빵 한 개>는 전작과 달리 주인공 사랑이가 아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겨울 사랑이가 떨어트린 붕어빵 한 개, 지난 봄 다락방을 정리하다 나온 못난이 삼형제, 지난 여름 사랑이가 잃어 버렸다던 신발 한 켤레, 지난 가을 희망의 집에서 만난 축복이 오빠, 지난 해 사랑이네 가족과 함께한 선인장 등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잘난 것, 멀쩡한 것, 힘이 센 것만을 지향하는 우리의 각박한 현대 생활의 모습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의 의미와 그 작은 행복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나간다.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꿈꿀 수 있도록 건전한 사고와 정서 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김향이 선생님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동화집이다. (푸른숲 / 7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