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가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온 스타일 채널에서 <트레이딩 마미>를 시청한다. 요즘 가장 즐겨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드라마고 영화고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재미에 보는데 이 프로는 허구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삶을 통째로 보여주니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 연출자의 극적 구성이라던가, 특정 부분의 과장된 묘사가 없을 수는 없지만 연기자가 아닌 일반인인 만큼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순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눈물이나 슬픔, 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말이나 상황, 정신세계 등 모든 게 사실로 보였다.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번 주에 나온 두 가족은 판이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한 가족은 사회와 고립된 채 자연과의 교감을 위해 맨 발로 걸어 다니는 등 특별하게 사는 유니크한 백인가족이었고 다른 한 가족은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흑인가족이었다.
유니크한 가정의 아버지 칼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독특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칼 가족은 우주와의 일체감을 맛보는 운동을 하는 등 정신세계를 우선시하는 삶을 사는 가족이었다. 가장 칼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름의 삶을 선택했는데 칼의 강한 카리스마에 아내 레슬리는 굉장히 순종적이었고, 세뇌당한 듯 했다. 레슬리를 그렇게 자기의 일부로 만든 것처럼 칼은 아이들 또한 독립적인 삶 보다는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들려고 했다.
다른 집에서 온 흑인 아줌마 비키가 주목한 건 바로 아이들 문제였다. 왜 아이들에게 자기 삶을 선택하도록 하지 않는가. 아이들 스스로 경험을 통해 뭔가 결정하게 하지 않고, 아버지가 아이들의 삶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게 비키의 주장이었다. 이 아줌마는 욕설까지 섞어가면서 이 유니크한 가정의 아버지를 질타했다.
물론 이 집 가장 칼은 이렇게 자신을 변론했다.
“당신은 우리 가정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발견했고, 아이들은 시행착오 없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이 방법을 권한 것이다. 아이들도 행복해하고 있다. 우린 아무런 문제도 없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고,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 상대에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흑인 아줌마는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일원으로 평범한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 유니크한 가정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난 이들은 심각한 문제를 가진 걸로 간주해서 자기 생각이 합리적이라는 오만함을 갖고 계속 이 집 가장 칼을 들볶았다.
유니크한 가정의 가장 또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면서 터득한 행복이니만큼 타인의 동의는 얻지 못하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방법인 것이다. 논쟁의 쟁점인 자식들을 자립시킬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악을 쓰고 욕을 하고 자신을 인신공격해도 처음부터 그녀의 말을 들을 의사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이 정도 격렬하게 토론하고, 욕설을 퍼붓고 비난하고 했으면 서로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남을 법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흑인 아줌마는 이 집을 나올 때 눈물을 글썽였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까지 남겼다.
“가장 유니크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1주일 사이에 무슨 정이 드느냐고, 하겠지만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게 마음 아프다,”
난 이들의 논쟁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똘레랑스’에 대해서 생각했다. 프랑스인의 정신이라고도 하는 ‘똘레랑스’라는 단어를 홍세화씨의 에세이서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사상을 내 삶에 접목해봤더니 인간관계가 훨씬 쉽게 풀렸다.
‘똘레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똘레랑스’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주장과 주장, 사상과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해, ‘똘레랑스’가 없는 사회에서는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다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미워하게 된다고 한다.
흑인 아줌마도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그 아저씨를 상대로 좀 심하게 싸웠지만 이건 의견과 의견의 차이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뿐이지 사람을 미워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혀 싸운 적 없는 사람들처럼 이별을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