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책과 만나게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아는 사람의 권유를 통해서 혹은 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신문을 통해서. 또는 도서관의 서가를 돌다가 심마니가 삼을 발견하듯 우리는 한 권의 책과 조우하게 된다.
나의 경우 아는 사람이 권해서 무턱대고 책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로써 책 한 권에 대한 생각이 대체로 같을 수는 있겠지만, 모두 같을 수는 없다는 명쾌한 결론이 나온다. 소수 의견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누군가 책을 권할 때 권하는 사람에 '혹'하지 말고, 책을 한 번 보고 나서 읽을 지 여부를 결정하면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도서평론가 '이권우'라는 이름은 우연하게 자주 만났다. TV에서 몇 번, 신문에서 몇 번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귀에 익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언젠가 그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기회가 왔다.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는 책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서평을 모은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을 저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생각을 비교해 보고도 싶었고,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운이 좋다면 마음에 드는 양서들과 대량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서.
나는 특히 3부 '경쾌하고 즐거운 열정의 콘서트' 편에 마련된 서평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 누군가가 썼다면 이러쿵저러쿵 시비 걸지 않고 무조건 읽는 경우가 있다. 언제나 읽는 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저자가 독자들한테 이런 신뢰를 얻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프로야구에서 타석에 나올 때마다 안타나 홈런을 치는 타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내는 책마다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들이 몇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는 그런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미술 평론가 이주헌을 꼽았다. 여기서는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의 서평이 실려 있다. 저자는 제목은 '자신있게 보기'지만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을 갖고 책장을 펼쳤는데, 미술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자연을 보듯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선입견을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을 저자도 가지고 있었지만, 제목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나도 선입견을 버릴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오롯이 들었다.
역시 3부에 마련된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서평도 눈에 띄었다. 저자는 숨어 사는 예술가 기행이라는 부제에 이 책의 주제의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미술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화단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자는 그들이 겪을 고통에 대해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예술마저도 상업화하는 현실에서 이들은 과거의 인물들이다. 여전히 장인정신을 양식으로 삼아 자신의 예술적 자존심을 지켜 나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예리한 칼날에 베인 듯 아파 온다. …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마치 구도자처럼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 … 너도나도 중심이 되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자기를 스스로 유배시키는 이들의 치열한 예술혼에 그저 가슴 뜨거워질 뿐이다.
그 외에도 김형경의 <사람풍경>, 김영하의 <검은꽃>, 노혜경의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조정육의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필립 솔레르스의 <모차르트 평전>,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등도 저자가 소개하는 책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통해서 책을 말하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시선으로 느긋하고, 재치있고, 편안한 문체로 독자들을 이끌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단풍놀이 때문에 책 읽는 사람의 수가 다른 계절에 비해 오히려 낮다는 요즈음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는 단편으로 엮어져 잠시잠시 읽어도 초점이 흐려지지 않는다. 때문에 여행길에 동행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