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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정상 부근에 있는 기도터
용문산 정상 부근에 있는 기도터 ⓒ 정성필
만약을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만 그러나 백두대간에서는 휴대폰 불통지역이 대부분이어서 구조 요청하는 일도 쉽지 않다. 백두대간을 혼자 걷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조심해야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백두대간 길을 나는 걷는다. 매일 걷고있다.

백두대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무거운 배낭이었다. 배낭이 무거워 배낭끈을 잡아 어깨 위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열중쉬어 자세처럼 뒤로 손을 모아 배낭을 올렸다 내렸다 해도 배낭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주 잠시뿐 배낭은 내 어깨를 악다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나면 어깨엔 죠스 이빨 자국 같은 배낭자국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느새 내 몸은 적응을 했다. 추풍령에서 출발하는 오늘은 배낭이 무겁다거나 배낭끈에 어깨가 아프다는 통증은 크게 느끼지 않는다. 적응을 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 나를 힘들게했던 것은 오르막 길이다. 오르막은 언제나 힘들다. 오르막은 맨 몸으로 가도 힘든 길인데, 더위에 배낭을 지고 올라간다.

처음 오르막을 걸을 땐 백두대간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고 가지게 된다. 오르막에서 빈혈같은 어지럼 증상이나 호흡이 가빠 쓰러지는 증상까지 심지어는 기절까지 하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오르막이 힘든 것은 오르막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이다. 오르막을 오르다 힘들땐 쉬기도 하지만 쉴 때마다 오르막은 끝도 없이 올라가야 하는 미로처럼만 여겨진다. 그러나 이젠 오르막을 오르는 요령을 터득했나보다.

용문산 샘물
용문산 샘물 ⓒ 정성필
오르막을 오르다 힘들면 우선 고개들어 멀리 본다. 멀리 보면 산과 하늘이 맞닿는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스카이라인을 보면 대충 얼마의 시간이면 정상까지 갈 수 있겠다는 짐작이 간다. 삼십분이면 삼십분 동안 참고 걸으면 된다는 기대치가 생긴다. 십 분이면 십 분만 가면 된다는 희망이 생기고 오 분이면 기뻐진다. 이런식으로 오르막에 대한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걷는다.

세 번째로 힘든 것은 물이다. 물 때문에 산을 내려와야했던적이 있었다. 마루금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물이다. 물이 있으면 계속 걸을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초기에는 물 찾는 법을 몰라 많이 어려워했다. 그러나 지도에 물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 해도 크게 당황해 하지 않는다. 물을 찾는 법을 차츰 터득해가고 있다. 산에서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정도 걸으면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구분하게 된다.

사람의 감각은 산에 있을 때 극대화 되는 모양이다. 산에 오래 있으면 청각, 후각, 시각들이 발달하게 된다. 내 속에 잠자고 있던 기능들이 다 살아난다. 심지어는 마루금에 있으면 산 아래에서의 소리가 들린다. 산 아래서 올라오는 밥 냄새를 맡을 때도 있다. 물을 찾을 때도 굳이 산 아래까지 내려갈 필요가 없다. 마루금에 서서 계곡을 보면 유난히 새까만 계곡이 있다. 그곳에는 물이 있다. 계곡으로 몇 미터 내려가다 보면 땅이 습하고 낙엽이 축축 하면 반드시 물이 있다.

국수봉정상
국수봉정상 ⓒ 정성필
그러나 내려가도 땅에 습기가 없으면 가뭄으로 물이 없다. 내려가야 소용없다. 추풍령까지 오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을 터득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터득한 것도 있다. 사람은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다른 기관을 발달시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한다. 나는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인간이 가진 인간의 몸과 마음이 그리고 본능이 놀라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는다.

백두대간의 일차 고비가 추풍령이라고들 한다. 추풍령까지 가는 게 어렵고 추풍령에서 다음 목적지를 가는 게 어렵다고 한다. 그게 백두대간의 일차 고비라 한다. 추풍령이 왜 그런 고비의 1차 관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추풍령이 남한의 백두대간 중 약 1/4 정도 되는 구간이다. 여기까지 몸과 마음이 적응을 못하게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한다. 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나머지 3/4이나 남은 백두대간이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출발을 한다. 금산으로 가는 들머리를 찾는데 쉽지 않다. 오늘 큰재까지 가야하는데 늦은 출발이다. 전날 다음 코스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는 동안 크게 두 가지를 확인했다. 금산이 오랜 개발로 인해 산이 반쪽 났다는 것과 용문산 기도원이 있다는 것을 확인 했다. 나는 금산의 들머리를 찾다 포기하고 금산을 보며 걷는 국도를 따라 걷기로 했다. 어차피 동강난 백두대간 길, 도로를 따라 걸으며 그 모습을 보기로 했다.

햇빛은 아스팔트에 부딪혔다. 머리 위로 땡볕이 쏟아진다. 땀이 비오 듯한다. 우측으로 금산이 보인다. 금산은 거대한 공사장이 되어 대형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산이 완전히 반쪽이 났다. 트럭은 산을 부수어 낸 잔 돌을 실어 수없이 지나간다. 트럭이 내는 먼지와 산을 깨트리는 요란한 소음에 정신이 없다. 배낭을 지고 아스팔트를 걷는 동안 트럭이 위협적으로 지나간다. 먼지가 뿌옇다. 아마 금산의 마루금을 따라 걸었더라면 뚝 끊어진 금산위에서 백두대간을 훼손하는 그 현장에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작점고개에서
작점고개에서 ⓒ 정성필
작점고개 도착한다. 종주기가 많이 붙어있다. 잠시 쉬면서 다시는 아스팔트 위를 걷지 않기로 한다. 아스팔트로 걷는 것은 산길을 걷는 것보다 더 힘들다. 산길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산에선 바람이 분다. 산은 앉아서 쉴 곳도 있고 물도 있다. 아스팔트는 그림자도 바람도 없다. 차가 위협적으로 지나간다. 복사열에 지친다. 다만 편편하게 잘 만들어진 길을 간다는 장점이 있다. 산길은 대신 험하고, 언제 무슨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에측 불허의 길이다. 그래도 아스팔트 보다는 산길이 편하다는 생각한다.

작점 고개에서 잠시 쉰다. 땀을 식히면서 물을 마신다. 국수봉 가는 들머리를 찾는다. 시원한 숲으로 들어서니 살 것 같다. 결국 내가 가야할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산길이라는 걸 깨닫는다. 473봉을 넘어가면서 낮은 잡목과 벌레들의 습격을 받는다. 높은 산을 걷는 것과 해발 오 백 미터 미만의 산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높은 산길을 걸을 땐 공기가 다르다. 해발 칠 백 미터 이상을 걸을 땐 걸으면서도 몸의 피로가 오히려 회복 되는 걸 느끼면서 걷는다. 하지만 해발 오백 미터 미만의 산길은 지치는 걸 느낀다. 해발 고도가 낮을수록 산엔 벌레도 많다.

오늘 용문산에 가면 용문산 기도원을 들려볼 작정이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인 까닭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된 기도원의 형태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다. 용문산 도착 전 687봉에서 기도원으로 난 길로 내려간다. 기도원은 보통의 기도원과는 달리 하나의 독립된 공동체다. 기도원 안에 학교도 있고 신용협동조합과 공동구판장까지 있다. 공동구판장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갈증을 푼다. 하드를 먹으면서 산행에 필요한 것이 있나 살핀다.

기도원은 여타의 기도원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물을 보충하려고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목사관 밑에 샘이 있다고 했다. 물엔 벌레가 가득했다. 오염되었다. 기도원에 도착하면 물통을 채우려고 다 비웠는데 후회가 된다. 기도원을 벗어나 용문산 밑에 가니 샘이 있다. 물이 깨끗하다. 물통을 채운다.

국수봉에서 본 옥산시내 전경
국수봉에서 본 옥산시내 전경 ⓒ 정성필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기도하려고 만든 움막 같은 것이 몇 개 있었다. 용문산 정상에 선다. 정상에 십자가를 세워 놓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는 젊은 남자가 기도하고 있다. 기도도 사람이 변하는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한다. 백두대간 길은 용문산 기도터에서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가야 있다.

용문산에서 국수봉을 향한다. 국수봉 정상에서 옥산시내가 보인다. 전망이 탁월하다. 구수봉에서 큰재가는 길엔 산딸기가 가득하다. 가는 내내 산딸기를 먹는다. 큰재에 도착할 땐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늦은 산행이다. 큰재에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있다. 이미 폐교가 된 지 오래 되었는지 잡풀이 가득하고 을씨년스런 풍경이다. 유리는 다 깨져있고, 교실 바닥은 먼지와 각종 쓰레기로 지저분하다. 그나마 깨끗한 장소는 운동장 밖에 없다.

물을 구하려고 주변을 찾았는데 없다. 하는 수 없이 폐교 건너에 있는 집으로 간다. 할머니 혼자 계시는 집인데, 할머니는 귀가 어두운지 잘 못 알아듣는다. 펌프질을 해서 물통에 물을 채우고, 밥물도 받고 씻기도 한다. 학교가 너무 을씨년스러워 할머니 집에서 잘 수 없냐 하니,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한다. 오늘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교에서 자야할 듯하다.

국수봉에서 뒤돌아본 백두대간 마루금
국수봉에서 뒤돌아본 백두대간 마루금 ⓒ 정성필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걸었던 백두대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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