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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의 사당은 한때 절박한 심정의 인조까지 찾아와 제사를 드릴 정도의 곳이었기에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사당은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고 깔끔한 정경을 안아내며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장판수는 사당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사당을 뒤지던 장판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때가 지나자 배만 고파왔다.

“이거 낭패구만. 시루떡이 있는 곳으로 가 저녁밥이나 얻어먹어야겠다.”

그때 보따리를 들고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무당이 사당에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이 장판수의 눈에 띄었다. 장판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채 그 무당이 하는 양을 지켜보기로 했다. 무당은 보따리 안에서 음식을 꺼내어 정성껏 사당에 차려놓고 술 한 잔을 따라 바친 후 중얼거렸다.

“정성이 부족하오나 대왕이시여! 부디 이 나라를 굽어 살피시어 돌보아주시옵소서.”

그러더니 알 수 없는 해괴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방울을 흔들어 대었는데 장판수는 그 광경이 너무나 괴기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차려놓은 음식 냄새가 장판수의 코끝에 스미자 저도 모르게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리고 말았다. 무당은 방울을 흔들던 손길을 멈추고서는 사당 안쪽을 향해 으스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신이 배가 고파 그런 소리를 낼 리는 없다. 어느 놈이 감히 온조대왕의 사당에 숨어들어 부정 타는 짓을 한단 말이냐! 썩 나오지 못할까!”

장판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었고 무당은 호들갑을 떨었다.

“네 이놈! 네 놈이 죽인 원혼들이 모조리 내 등 뒤에 서 있구나! 대체 몇 사람을 죽인 것이냐!”

당시의 보통 사람 같았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을 말이었지만 장판수는 그런 말에 흔들리는 이가 아니었다.

“원혼이라니 헛소리 말라우. 내래 사람을 죽여도 함부로 죽이진 않았어!”

“내 눈에는 보인다!”

무당은 소란을 떨더니 작은 칼을 쑥 뽑아들었다. 놀란 장판수는 즉시 칼을 뽑아 대응하려 했으나 무당의 칼은 제단 위에 조용히 놓여졌다.

“잡귀는 물렀거라!”

장판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무당이 하는 양을 계속 두고 보았고, 무당은 알 수 없는 소리를 계속 지껄여 대며 나름대로 열심히 이상한 제사를 올렸다.

“에헤라이 잡귀 붙은 칼잡이야! 내게 붙은 원귀의 한이 너무나 사무쳐 있구나! 그 놈을 떼어내려면 풍산으로 가거라! 어허이~!”

굿인지 제사인지 모를 의식을 마친 무당은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가 버렸다. 장판수는 무당이 남겨놓은 음식을 먹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별 놈의 무당 다 보겠구만.’

음식을 다 먹은 장판수는 새벽에 의주로 갈 양으로 사당구석에서 잠을 청하였다. 하지만 어쩐지 잠은 오지 않았고 자꾸만 무당의 웅얼거림이 생각나 장판수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별 거지 발 싸게 같은 무당 놈 같으니라고.”

순간 장판수는 무릎을 탁 치며 벌떡 허리를 일으켰다.

‘그 땡중 놈 일행이 함경도로 간다고 했던가! 무당이 잡귀를 떼어 놓으러 가라고 했던 곳이 풍산이 아닌가! 풍산은 함경도 회령에 있지!’

장판수는 우연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이는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두청은 장판수가 자신을 찾아 올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무당을 시켜 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장판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성을 뒤져 요행히 무당을 잡아 캐물어 본다고 해도 그 이상의 것은 알아내기 어려 울 것이었다.

‘좋다! 풍산으로 가보자!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의주로 간다고 해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덧붙이는 글 | 30일 다음은 가야하는 길, 와야 하는 곳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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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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