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운전면허 소지자는 2005년 4월 말 기준으로 국민 절반에 육박하는 2296만5000명에 이른다. 2003년 100여만 명, 2004년 80여만 명이 신규로 운전면허를 취득했으며 아직도 한 해 응시자가 150여만 명에 이르는 등 '국가고시'로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시험장소 시설 편차 큰 데도 통일된 관리지침 없어
운전면허시험은 경찰청 산하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이 관리하는 전국 26개 시험장과 각 지방경찰청 면허계가 관리하는 484개 운전전문학원 등에서 치러진다. 운전면허시험은 학과, 기능, 도로주행 별로 시행규정이 정해져 있어 전국 어디에서 치르든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면허시험을 담당하는 시험장과 전문학원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과 경기의 몇몇 시험장을 조사한 결과 시험 시설장비에 대한 운영, 시스템 검사, 유지보수 등이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나 문제점이 노출됐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능시험 시설장비들이 전반적으로 노후했고 상태 또한 시험장과 학원에 따라 큰 편차를 보임에도 통일된 관리지침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어떤 사람이 2곳의 시험장에서 서로 차이가 나는 시설장비로 각각 시험을 봤다고 가정할 경우, 한 쪽에서는 불합격인데 다른 쪽에서는 합격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응시자가 '운전면허시험도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하지 말란 법도 없다. 국가고시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기능시험 관련 시설장비에는 통제실의 컴퓨터와 기능검정채점기, 차량장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정성적 판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면허시험장은 담당 안전요원이 점검한 후 기능시험을 실시하고, 전문학원은 유지보수업체 직원이나 자체 인력이 측정한 후 실시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로 계량화하는 '정량적 판단'이 도입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기능시험과 직접 연관된 시설장비의 관리시스템은 더욱 미흡하다. 검지선과 컴퓨터 등 시험측정 관련 시설장비는 최초 검수 후 이상 유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기준이 없을 뿐더러 지도감독 소홀과 장비 불량을 확인해도 행정처분을 내릴 기준도 없다.
면허시험 시설장비 운영기준 제도화해 공신력 높여야
시험장과 학원에서 주로 사용되는 시설장비들은 7~9년 정도된 것으로, 지난 2002년 경찰청의 용역의뢰를 받아 '경영정보연구원'이 조사한 '운전면허채점기사용연한연구'의 장비별 표준사용연한 3~5년과는 2배 가량 차이가 난다.
한편 '도로교통법 시행령'은 시험과 관련한 지침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있다. 기능교육장 코스의 종류·형상·구조와 도로주행교육을 실시하는 도로의 기준, 자동차의 사용연한 등은 행정자치부령으로 정하고, 자동차의 점검과 기능검정채점기의 규격·설치 등은 경찰청장이 정하게 돼있다. 하지만 교육용자동차를 제외한 기타 시설장비들은 구체적인 관리기준이 없다.
운전면허시험관리단 담당자는 "시험장 별로 안전요원들이 매일 장비들을 점검해 기록을 남긴 후 기능시험을 치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시험장비에 대한 운영과 관리규정은 도로교통법과 시행령, 규칙, 지침 등을 살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문제가 있다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채점기 규정은 경찰청장 공고로 정해져 있다"면서 "전국 시험장 시설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관리 규정이 없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설장비는 시험장 별로 사용 상태가 다를 수 있는데 자동차처럼 사용연한을 일일이 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시설장비업체 실무자는 "시험장과 전문학원의 시설장비는 최초 납품 이후 특별한 관리지침이 없어 거의 방치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개별 시험장의 시설보완 요구가 있을 때만 조치를 취하는 게 현실인데, 전국의 시험정보뿐만 아니라 시설정보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기준 하에 통합, 관리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온 국민이 시험대상자인 운전면허시험은 공신력이 생명이다.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시험과 관련된 시설장비의 성능과 운영기준을 통일해 수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정기적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검사를 진행해 기준치를 위반할 경우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엄격한 사후조치도 요구된다.
운전면허는 국가가 인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경우에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지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 '특허'가 아니다. 그런데 마치 특허처럼 사용되고 있는 운전면허의 관리는 허가를 처음 담당하는 시험장과 학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엄격한 시설관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