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역으로 우리 중개업자가 보기에도 너무 '심한' 고객들이 종종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터무니없이 낮게 거저 먹으려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꼭 자기는 최고 가격으로 쳐서 받으려고 한다.
2층 상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리모델링을 해 4층으로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금 사정이 썩 넉넉지 않았던 것. 어찌 해서 새로운 상가를 분양 받으려는 사람이 나타나기는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가격을 깎으려고만 들었다.
언젠가는 시세에 맞게 아파트를 매도해 달라는 고객도 있었다. 빨리 팔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부탁도 했고 마침 매수자도 나타나 계약이 성사될 듯했다. 그런데 다른 중개업소에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접수하고는 팔지 않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나뿐만 아니라 매수자와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저버린 거다. 이런 일은 아파트 가격이 상승 곡선을 탈 때면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한 사람이 1083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내가 봤을 때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부동산 투자의 귀재들은 절대로 세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양도소득세는 어차피 시세차익이 있을 때 내는 세금이다.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생기는 시세차익이 양도세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 없이 부동산 '투기'에 뛰어드는 것이다.
최근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내 남편에게 한숨을 쉬면서 한탄했단다. 4년 전 미분양 아파트를 떠안다시피 해서 샀는데 50평이 넘기는 하지만 지방 도시인 창원의 그 아파트에 지금 무려 2억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고 한다. 전자부품 만들어 공장 운영해 봤자 툭하면 납품도 못하고 물건값도 떼이는데, 부동산은 2억원이라는 큰 돈을 너무 쉽게 벌 수 있더라고, 그러니 누가 골치 아프게 회사를 운영하겠냐고 되묻더란다.
지방 중소도시인 창원의 부동산 시세가 높은 이유
창원은 지방 중소도시인데도 부동산 시세가 굉장히 높다. 50평대 아파트는 서울의 웬만한 곳과 맞먹는, 평당 천만 원이 훨씬 넘는다. 얼마 전 창원에서 오피스텔 분양이 있었다. 청약 접수가 있던 지난 6월 13일부터 이틀 동안 창원은 그야말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는 게 맞을 만큼 부동산 열풍에 휩싸였다.
최저 43평에서 최고 103평까지 1060세대를 분양하는데 무려 4만632명이 청약해 경쟁률만 38대 1을 기록했고, 청약금만 해도 1조5000억원이 몰린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떴다방과 투기 세력들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청약 접수 하루 전날 오후부터 접수처 앞에서 밤을 새며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사람들은 오피스텔을 분양 받기만 하면 1억원이 넘는 웃돈은 기본이라며, 로또 복권보다 확률이 더 높다며 들떠있었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오피스텔에 입주하겠다는 실수요자는 거의 없었고, 분양권 전매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만 넘쳐 났다.
그런 곳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한 곳에서 '한 몫 단단히 챙기고' 또 어디가 물이 좋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곳으로 옮겨 간다. 창원에 있다가 경기도로, 충청도로 옮기는 식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일 년에 몇 번씩 사무실을 옮기기도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정말 그 오피스텔에 입주하고 싶어 했다. 이른바 찾아보기 드문 '실수요자'였던 셈인데,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 웃돈을 주고서라도 분양권을 살 생각으로 현장에 갔단다. 그런데 웃돈이 7천만 원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다르게 치솟아 1억 이상까지 올라가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소문으로는 창원 현지 사람보다는 서울 같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분양권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당신의 거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부동산 매매는 중개업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지인 중에 잘 아는 중개업자를 통해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이라며 상가를 분양 받은 분이 있다. 취득세, 등록세를 다 내고 등기 이전을 마친 지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임대도 되지 않고 매매도 되지 않고 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 중개업자는 벌써 다른 지역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상태다.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투자했다가 실패한 경우다.
요즘 부동산을 하는 나도 "사모님, 제주도에 있는 부동산인데요. 지금 투자하시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땅이 있습니다"는 전화를 자주 받는데 이른바 '기획부동산'이다(그럴 때는 "저희도 부동산 사무실입니다"라고 하면 조용히 퇴치할 수 있다).
내 주위에도 그런 전화에 혹해서 온천 개발 예정지를 평당 10만원에 산 사람이 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천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3만원에 내놓아도 매수인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부동산은 결국 거래 당사자에게 모든 문제가 넘어오게 되어 있다.
2000년 2월 말, 우리 가족은 급하게 이사해야 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집을 보고 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한데 모여 오붓하게 살아갈 집이 없다는 생각에 생각이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어렵게 '즉시 입주 가능'한 아파트를 발견했지만 그 아파트는 임대가 아니라 매매로 내놓은 집이었다.
우리는 집주인에게 전세로 해달라고 졸랐지만 주인도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꼭 팔아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때 중개사무소 소장님이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매매를 하되 잔금을 준비하는 3개월은 전세로 하고 그 후에도 돈이 안 되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결국 우리는 3개월 동안의 전세 계약서와 3개월 후에 잔금을 치른다는 아파트 매매계약서 이렇게 두 장의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32평 아파트에서 살게 됐고 비록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 집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지금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집을 팔았을 때는 살 때보다 2500만원이나 올라 있었다. 나는 좋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난 운 좋은 경우였다.
집을 살 것인가, 전세로 지낼 것인가
만약 그때 소장님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집을 가지지 못하고 전세를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개업자를 하는 지금도 나는 고객들에게 자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은행 대출을 활용해 전세를 얻기 보다는 자기 집을 마련하기를 권한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서민이 목돈을 마련해 집을 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월급을 모아 그야말로 정직하게 내 집을 마련하려면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대출을 활용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달이 들어가는 이자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획기적인 부동산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말이다. 부동산을 '투자'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투기'가 시작된다지만 어쨌든 집 없이 한국에서 산다는 게 만만치 않은 것 또한 현실 아닌가.
정부가 8·31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그 실효성을 놓고 말이 많기는 해도 값비싼 집을 투기 목적으로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팔려고 매물로 내놓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된 탓도 있지만 창원의 40평 이상 대형 아파트들도 서서히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물론 실수요자들이 많은 20, 30평대 가격이 크게 떨어지진 않겠지만 말이다.
현재 창원의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래도 나는 다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치지 않고도, 시세차익 따지며 머리 굴리지 않아도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