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보면 스크린에서 보는 것보다 배우들의 진한 분장과 어색할 정도로 화려한 의상이 눈길을 부담스럽게 할 줄 알았는데 막상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정말로 백제 사람들이 부활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분장을 하고 역할에 맞는 의상으로 갈아입은 보조 출연자들을 촬영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정말로 백제 시대 한가운데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분위기였다.
두어 달 간의 드라마 <서동요> 촬영장 공사가 마무리 되는 가운데 드디어 29일 2시 제작 발표회가 열리는 동시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 마을에 TV에서 볼 수 있던 배우들이 온다는 소식에 고추를 따던 바쁜 손길들도 잠시 접고 삼삼오오 기자회견장으로 몰려들었다.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 드라마 <서동요> 촬영장 일대가 교통정체를 빚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사는 동네에 드라마 촬영장이 들어 선 덕에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 참여하고 유명 연예인들과 유명 인사들을 직접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거기에 드라마 작가를 꿈꾸었던 과거 한 시절이 있었던 나한테는 드라마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남모르는 감회에 젖게 하는 일이었다.
촬영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드라마 <서동요>의 작가인 김영현 작가가 제작 발표회장 한 쪽에 조용히 도착해 있었고 이병훈 감독 역시 벌써 촬영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프로다운 모습이 보였다.
거기에 드라마 <모래시계> 성공의 주역인 김종학 감독의 다부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연 배우들이 그렇게 다녔더라면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벌써 둘러싸였겠지만 정작 드라마를 보이지 않게 이끌어가는 감독과 작가를 알아보는 군중은 한때 그 세계를 동경했던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상인 일일 드라마 <어여쁜 당신>의 주인공 ‘인영이’(이보영)가 선화 공주 의상을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 속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역시 충청도 양반들이 많이 모인 자리라 그 표현의 강도가 세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직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훔쳐보며 TV 속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을 비교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병훈 감독으로부터 직접 듣는 드라마 <서동요>의 스토리 전개 방향이야말로 압권이었다.
이병훈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드라마 <서동요>는 "‘박사’ 제도를 중심으로 한 백제의 뛰어난 과학 기술을 소재로 파란만장한 무왕의 일대기와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한다. 서동이 백제의 왕손임을 모른 채 백제의 최고 야금 기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 전설적인 신검인 칠지도(七支刀)와 금동대향로 등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도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백제의 4줄짜리 유행가와 거기에 얽힌 러브 스토리만 가지고 50부작 드라마를 이끌어 갈 수는 없기에 6개월 동안 작가와 감독이 온갖 문헌을 뒤지고 머리를 짜내 백제의 뛰어난 과학 기술을 접목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드라마 <대장금>의 명성을 이어갈 <서동요>라고 한다.
부여군 충화면 가화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백제 역사의 가장 찬란했던 한 시대가 드라마를 통해 유려한 부활의 서막을 열었다. 패망의 한으로 얼룩진 백제국의 서러움만 강조했던 지난 역사의 오류를 이 드라마가 바로잡아서 백제인들의 과학 기술에 대한 뛰어난 업적이 21세기에 배아 줄기 세포 연구의 권위자까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음을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서 백제에 대한 역사 인식이 새롭게 자리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