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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밭이 있는 우리 집. 오른쪽 조립식 건물이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전셋집이다.
작은 꽃밭이 있는 우리 집. 오른쪽 조립식 건물이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전셋집이다. ⓒ 김정혜
"복희 엄마! 또 마당 청소해? 그 놈의 마당 다 닳아빠지겠네. '내 집'도 저렇게는 못 할 거야."
"왜 '내 집'이 아니에요? 이 집 '내 집'이에요! 꼭 집문서가 있어야 내 집인가요? 내가 살면 내 집이죠 뭐."

참 희한한 것이 내가 마당청소를 할 때마다 앞집 영미엄마는 꼭 이렇게 훼방 아닌 훼방(?)을 놓는다. 한 시간이면 넉넉할 청소를 꼭 두 시간을 소요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빼앗긴 한 시간에 대한 보답으로 영미 엄마가 타온 시원한 냉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부지런히 마당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10여년을 살다 서울로 시집을 온 나는 꼭 1년 만에 이곳 김포시 대곶면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골로 탈출(?)했다. 00년도의 일이었다.

시골출신 새색시, 서울생활 1년 만에 탈출하다

답답한 서울에서 살다보니 시골의 흙냄새 거름 냄새를 향한 상사병에 몸살이 나 배기지 못했던 것이다. 숨통이 트였다.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단칸방이지만 웅장한 저택이 부럽지 않았다. 이슬 대롱대롱 매달린 풀잎을 마주하는 시골의 새벽이 좋았고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온 마을을 허기지게 하는 시골의 해거름이 좋았다.

한바구니 가득 상추를 뜯어가는 시골 아낙들의 검게 그을린 웃음이 좋았고 둥둥 걷은 바지 밑의 구릿빛 종아리에 덕지덕지 흙을 달고서도 자식 같은 논 밭 뙤기를 보살피느라 노심초사 종종걸음 치는 농부의 우직함이 좋았다.

단칸방에서 다시 1년 만에 바로 이웃해 있는 지금의 전셋집으로 옮겼을 때는 날아갈 것 같았다. 항상 환한 햇살이 비추었고, 마당으로 나 있는 큰 창은 내 키보다도 더 컸다. 그 창을 열면 앞집의 텃밭이며 동네 어귀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겨우 방 두 칸짜리 18평 조립식 건물 전세가 그렇게 좋아? 나중에 우리 집 사면 그땐 아예 기절하겠네."
"우리 집? 우리 집이 뭐 별 건가. 여기서 밥 먹고 잠자고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살면 그게 바로 우리 집이지."

"뭐? 우리 집? 그럼 자기 집문서 있어?"
"집문서 그런 게 왜 필요해.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 놈의 '내 집'이 뭐라고. 난 집문서 하나 갖기 위해서 10년, 20년 내 인생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아."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건 언제나 뿌연 안개 속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오리무중 같은 것. 일이 터졌다. 결국 집 때문에 내 인생을 저당 잡힐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집이 있는 마을 전경이다.
우리집이 있는 마을 전경이다. ⓒ 김정혜
시댁에서 불어온 '우울한 뉴스'

내 시댁은 무허가 주택에서 40년을 살아온 분들이었다. 그러던 2003년 여름, 시댁이 있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재개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모르는 재개발 조합이 만들어지고 재개발에 동의하는 도장을 받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노인네들의 대답에 답답했던지 직접 집으로 찾아오는 재개발 조합사무실 사람들로 문지방이 닳을 지경이었다.

"에미야! 도장만 찍어주면 아파트를 거저 준단다."
"아파트를 거저 준다고요? 문서 하나 없는 무허가집도 아파트를 거저 준대요?"

재개발이 뭔지, 도장은 왜 찍어 달라고 하는 건지, 또 도장만 찍어주면 어떻게 그 비싼 아파트를 공짜로 준다는 건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난 바보스러울 정도로 무지했다. 단지 떠오르는 건 뉴스에 심심찮게 비치던 무허가촌의 철거장면이었다.

육중한 기계에 의해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는 집들을 바라보며 울부짖던 사람들, 그들의 처절한 얼굴과 오열하는 통곡소리. 그들 속에 시부모님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매일 아침,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시댁으로 내달렸다. 시댁을 오르는 언덕배기엔 하루 밤 자고나면 부동산 사무실 간판이 새로 생겨났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부터 알아봐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구청으로 시청으로 직접 찾아다녔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집문서에 저당 잡힌 내 인생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시댁과 같은 처지의 무허가 집들이 하나둘씩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든 동네를 떠나며 애정 어린 충고를 남겼다. "지금은 무허가집이라도 부동산에 팔 수가 있지만 재개발이 확정되면 그나마 무허가 집들은 팔 수도 없고 또 보상을 받는다하더라도 약간의 이사비용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에미야, 우리 이제 남의집살이 해야 되는 거냐? 무허가라도 내 집이라서 맘 편했는데. 다 늙어서 원."

이불보따리 이고지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했던 셋방살이의 서러움이 뼈에 사무친 부모님들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해서 좋은 길로만 갈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살이지 않는가. 시부모님을 위해 집을 구해야만 했다. 집을 팔고 융자를 얻었지만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김포에 있는 조그만 빌라를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결국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집을 사는 것은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나는 20년간 상환하는 은행 융자를 얻었다. 어쩔 수 없이 20년 동안 내 인생을 저당 잡힌 것이다.

무허가 집을 팔고 20년 상환 융자를 받아 마련한 시부모님 댁.
무허가 집을 팔고 20년 상환 융자를 받아 마련한 시부모님 댁. ⓒ 김정혜
내 집 장만이 꼭 필요한가?

시골에 산 지 3년. 나는 내 집 장만을 꿈꾸지 않는다. 아직 18년 동안 융자금을 갚아야 하니 꿈을 꿀 수가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불규칙해지는 남편의 수입으론 시댁의 융자금 상환조차도 버거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내 집 장만의 꿈을 버리고 얻은 여유로움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의 여유로움에서 오는 행복을 나는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현재 내 형편을 수긍하고자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과감히 내던져 버린 것이다. 대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이른 새벽.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며 남편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가끔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남편과 마당에 나와 앉아 맥주 한잔 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지인들이 우리 집에서 잠시 잠깐 쉬어갈 때면 대궐 같은 그네들 집이 가지지 못한 손바닥만한 우리 집 마당을, 또 온갖 꽃들이 옹기종기 앞 다투어 피어있는 한 뼘 짜리 꽃밭을 시샘하며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그 부러움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결국 나는 내 집 장만의 거창한 꿈을 시골에서의 소소한 작은 행복들과 맞바꾼 셈이다.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꿈꾸기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작지만 나름대로는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나를 혹자는 현실에 쉽게 안주해버리는 '현실주의자'라고, 또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꿈도 없는 지극히 안이한 '현실주의자'라고 몰아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린 나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부모님 집을 구한 것도 어떻게 보면 '내 집 마련'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독자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있어 18년간 갚아야할 '빚'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님의 집이지 내 집이 아니지 않는가.

인생의 최소단위는 무얼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이 쌓여서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쌓여서 세월을 만들고 그 세월이 곧 인생이다. 인생에 나중은 없고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순간의 삶이 행복하다면 하루가 행복할 것이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만든 인생. 먼 훗날 그 인생을 뒤돌아본다면 또한 후회는 없을 것이다.

영미엄마는 이런 나를 별난 사람이라 한다. 누구에게나 내 집 장만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요즘 세상 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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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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