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하면 언뜻 생각나는 몇몇 단체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중 참여연대는 몇 번째에 자리하고 있을까.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호불호의 감정을 떠나 가장 앞줄 근처에 그 이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간 벌인 활동만 돌아봐도 98년의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선운동과 2002년 대선 정치자금 감시운동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현안들이다. 지난 10여년 간 많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왔던 참여연대가 오는 10일, 11주년을 맞이한다. 11살 참여연대가 갖는 또다른 고민과 비전은 어떤 것일까.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차병직(47·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변호사를 만나 참여연대가 안고 있는 발전적 고민과 시민과 함께 하는 참여의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대기업·정치권력 부조리를 절차적 이유로 엎을 수 없다"
- 그동안 참여연대는 삼성그룹과 관련된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발해 왔다. 최근 검찰에서는 "신문 기사에 의존한 고발이라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론이 제기되었다.
"검찰 공보관이 한 이야기로 아는데 사실 대응할 가치도 없다. 전문성을 가진 내부의 경제학 교수와 법률가들의 충분한 사전 검토를 거친 일이다. 타성에 젖은 검찰이 대기업의 무지에 짓눌려놓고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X파일' 사건에서 사법적 판단이 더 우선돼야 할 대목이 도청이냐 테이프에 담긴 내용이냐, 논란이 많은데.
"솔직히 말해 내부에서도 정보기관의 불법이 문제냐, 그 안에 담긴 부패한 내용이 문제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물론 개인의 통신자유나 프라이버시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이나 투명성 확보가 안된 우리나라에서는 거대기업과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절차적 이유로 엎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통신비밀보호법과 관련해 법정형이 외국과 비교해 2~5배 정도로 유난히 높다. 또한 도청행위를 한 사람과 공개행위를 한 사람을 함께 처벌한다. 사안의 중대성과 공공성을 감안한 '예외사유'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고 일률적인 처벌을 한다는 말이다. 독일의 경우 불법도청 결과물을 공개할 때 그런 '정당화 사유' 규정을 둔다."
- 노무현 대통령이 X파일 사건에 대해 미온적 반응을 보여 '삼성 구하기'에 나섰다는 의혹을 사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불법 도청에 직간접 관련이 되어 있다면 그로 인해 입을 정치적 타격에 대해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전 국민적 여론이 높은 사안인 만큼 정치적 합의를 바탕으로 특별법 등을 제정해 엄중히 다루어야 한다. 지나간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 때문에 무작정 공개불가를 외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창립 11주년, 사회통합의 방법을 고민할 때"
- 어느덧 창립 11주년이 됐다. 그간 많은 일을 해오기도 했지만, 좀 더 발전적 방향을 위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참여연대 초창기인 10여 년 전만 해도 시민단체의 운동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를 설정한 후 온통 그 곳에 매진해 성공하면 '승리' 실패하면 '패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단체가 주장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 참여연대도 이제 의제설정이나 사업목표가 우리사회 전체를 통합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통합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자칫 연성화로 비칠 우려는 없을까?
"사실은 그것이 현재의 고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풀어 말하자면 포기와 양보, 때로는 타협이 가능한 유연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옳다고 끝까지 물불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참여연대가 신생단체도 아니고, 사회에 미치는 의사표현이나 행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갖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고려를 '어느 정도' 할 것인가도 고민의 대상이다."
- 시민단체가 때로는 '시민'의 참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지역의 시민들이 모두 시민단체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원을 하고 성원하고 지켜보는 것도 참여의 한 방식이다. 중요한 건 운동 자체가 시민과 동떨어진, 이를테면 정치 일색으로만 흘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다수의 시민이 원하는 운동이 무엇이며 같이 생각하고 느끼며 호흡하는 것이 어떤 건가를 고민해야할 의무는 있다고 본다."
"본질은 권력비판, 칭찬 기대하지 말라"
- 보수언론이나 그것을 즐겨보는 이들은 여러 시민단체들을 '친정부단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런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평가는 해당 단체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오해는 <오마이뉴스>도 함께 받지 않나(웃음). 참여연대는 설립 당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한 기본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것이 정치적 독립성이냐 하는 다소의 논란은 있었지만 우리들은 현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도 항상 그 원칙에 입각해 평가한다고 믿고 있다."
- 때로는 그 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들에겐 '비판을 위한 날'만 세운다는 불만도 있는 것 같다. 잘한 사안에 대해선 칭찬을 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참여연대에 대해서 왜 남의 비난만 하냐는 볼멘소리가 많다. 고발을 주로 한다고 '고발연대'로 부르기도 한다. 국가기관에서도 칭찬 좀 안 하냐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이라면 기본적으로 결점 없이 일을 잘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걸 특별히 칭찬할 필요가 있을까. 지적 당하지 않으면 잘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칭찬을 바라지 말라. 물론 칭찬만 하는 단체가 따로 생겨났으면 한다."(웃음)
- 양쪽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때때로 거꾸로 생각해볼 때 우리는 원칙과 정도를 지켰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찰의 대상이다. 왜 그런 오해가 있었는지, 때로는 그런 오해를 샀다면 그것 역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 노무현 대통령 집권 절반이 지났다. 참여연대를 대표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쨌든 전체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부 내부의 민주화라고 하는 점에서 과거보다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정부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찾기 힘들 정도라 안타깝기도 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이 '현상'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마치 한가지가 '돌파'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인상을 주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 같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말고 일정한 정책을 밀고나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 산문집이나 여행기도 여러 권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변호사가 아닌 작가 차병직의 모습은?
"글쓰기는 칼럼으로 시작했다. 어찌 보면 참여연대 일의 연장선상이었다. 사실 처음엔 그 인세로 참여연대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고, 결국 약간 도움이 되긴 했다(웃음). 그 외 참여연대 활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책들도 에세이 포함 절반가량 된다. 개인적으론 평소 시민활동에 관심이 없던 분들이 나의 책을 통해서라도 참여연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
"비판 이전에 자신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다"
- 참여연대가 여러 시민을 아우르는 단체가 되기 위해선?
"기존에 평소 우리를 후원, 격려해 주시는 분들은 따지고 보면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분들에겐 위임받은 만큼,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잠재적으로 막연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도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하겠다. 또 우리를 적대시 하던 분들에게도 부드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모든 참여연대 가족들이 남을 감시하고 비판할 땐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평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 겸손이라고 하면 자신을 돌아보자는 뜻인가.
"그렇다. 사실 남을 감시, 비판하지만 우리라고 결점이 없을 순 없다. 항상 스스로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상대방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인지, 혹은 잘못을 지적해 교정시키는 것이 목적인지, 비판의 대상에 대해서도 항시 새롭게 살펴야 한다. 특정기업이건 국가 기관이건 공격의 목표로 삼았을 때 그 궁극적 목적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 상대의 반응에 따라 화해를 할 수도 비판의 자세를 유지할 수도, 누그러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 참여연대를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참여연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적이다. 때로는 필요없고 골치아픈 존재로 보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게 참여연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주장만을 펼치거나 시비만 거는 단체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켜드리고 싶다. 오는 7일 세종홀에서 참여연대가 11주년을 맞는 기념식과 후원의 밤 행사를 갖는다. 누구라도 오실 수 있는 곳이니 많이 참석하셔서 참여연대가 어떤 곳인지 느끼셨으면 좋겠다. 늘 중앙정부만 바라보지 말고 국민들의 권리를 직접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에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건강한 정치행위의 일종이다."
이야기 내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사진기자의 속을 태우던 차병직 변호사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야 "재미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어 미안하다"며 "그간 참여연대 창립 행사 때는 연예인들이 와서 간단한 미니콘서트를 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상근자들이 나와 직접 공연을 하고 마술쇼도 열린다,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한다"고 늦은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