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은 우리 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경술국치일이었다. 그 경술국치일 이후 우리 겨레는 일본총독부의 압정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그런 속에서 많은 선각자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선각자 중에 조선어학회를 이끌던 분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로지 나라의 말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맘껏 우리말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조선어학회는 우리 겨레의 미래를 위해 엄청난 일을 했음이다.
그 조선어학회를 이어온 한글학회가 지난달 31일 창립 97돌을 맞았다. 이를 기려 한글학회 강당에서는 늦은 3시에 창립 기념식 및 특별 발표회 그리고 한글 지킴이 위촉과 한글문화협회 다시 세움 선포가 있었다.
먼저 한글학회 김계곤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우리 한글학회는 한일합병 두 해 전에 창립하여 97년 동안이나 한글을 지키고 발전해내는데 온 힘을 다해왔다. 하지만 97년이란 세월 속에는 조선어학회의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현재 이 자리에 계시는 명예이사님들, 그동안 뽑히신 한글지킴이들, 또 모임 때마다 자리를 지켜주신 회원들의 공로를 절대 빼 놓을 수 없다. 이제 그분들과 함께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한글학회의 미래를, 한글의 미래를 힘차게 개척하자.”
감개무량한 듯 말을 잇는 김계곤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강로 한글학회 명예이사의 “광복 60돌을 되돌아보고 내다본다 - 우리나라 글살이의 역사”라는 특별발표회가 있었다.
우리 나라 여러 가지 폐단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한자 쓰는 데서 비롯됐다. 신라 경덕왕을 중심으로 우리말 땅 이름을 모두 한자로 고친 이후 한자만 쓰는 기득권층 때문에 나라꼴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특권을 뺏기기 싫다는 생각 밖에 없었던 기득권층들이 밥 푸는 ‘주걱’을 ‘周巪(두루 ‘주’, 사람이름 ‘걱’)’ ‘치마’를 ‘赤亇(붉을 ‘적’, 망치 ‘마’)’란 어처구니없는 한자까지 만들어 쓰기도 했다.
“광복 60돌을 맞은 지금 우리나라 문화를 얼룩글(국한문)로 배운 분들이 좌지우지해서 현재의 어지러움을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도 글자와 전쟁을 하며 간자체를 쓰고 있는데 우리도 이제 지나간 악몽에서 깨어나 세상을 널리 보고 우리글을 가지고 온 세계에 널리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어서 2005년 세 번째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가 주는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식이 있었다. 이번엔 누리그물(인터넷) 신문인 ‘참말로(www.chammalo.com)’가 지킴이로 뽑혀 위촉장과 기념메달을 받았다.
참말로는 신문의 제호부터 순 우리말인 ‘참말로’로 쓴 것부터가 한글 사랑을 짐작케 한다. 대다수의 누리그물(인터넷) 신문들이 영어로 제호를 쓰고, 우리말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를 통틀어 언론사가 ‘우리 말글 지킴이’에 선정된 것은 참말로가 처음이다.
참말로는 그동안 우리말글을 지켜내는데 한몫을 한 것은 물론 우리말글 관련 기사를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다뤄왔다. 참말로(대표 인병문)는 2003년 6월 15일 국민의 언론주권 실현과 개혁연대를 목표로 박해전 대표기자(전 <한겨레> 여론매체부 차장, 제1회 민족언론상 수상)가 창간했으며, ‘우리 말글을 살리는 말이 참말’임을 강조한 창간사에 따라 ‘참말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참말로 인병문 대표는 지킴이 위촉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인사말을 했다.
“‘나랏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고, 나랏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른다’는 주시경 선생의 말씀과 같이 겨레말글이 살 때만이 나라와 겨레가 번영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거리에 나가보면 이곳이 대한민국의 거리인지 외국의 거리인지 분간할 수 없으며, 방송에서 외국말을 퍼트림으로 인해 말글은 죽어가고, 우리의 혼도 더불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울 뿐이다.
참말로는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창간했다. 국민의 언론주권과 정치개혁을 이루어 올바른 대한민국을 이루고자 지금껏 우리말글 살리기와 우리민족 살리기를 위해 활동했지만 아직은 많이 모자란다. 그런 저희에게 이 상을 주시는 것은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채찍이라 생각하고 참말로는 앞으로 민족, 말글을 살리고 분단을 극복하며, 통일을 이루어 우리 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다.”
참말로는 여태껏 해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우리말글을 지키겠다는 다짐들을 하고, 참석한 사람들은 이런 참말로에 큰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한글문화협회 다시세우기 선포가 있었다. 이 선포의 인사로 문제안 대표는 말한다.
“우리 어릴 적에 기차를 뜻하는 ‘쇠달구지’라는 토박이말이 있었다. 난 무식해서인지는 몰라도 한자로 된 기차보다 쇠달구지가 더 좋았고, 방송국에 있을 때 그런 말을 방송했다. 그때 하늘같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불러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어 그 뒤로 한글운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겨레의 대다수는 일제의 간악한 방해 속에서도 오랫동안 흰 옷을 입고 지켜왔는데 우리 말속에는 그런 아름답고 힘차고 끈질긴 철학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철학은 한자를 통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한글문화협회의 대표를 맡을 제목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뛰어볼 생각이다.”
한글학회, 어쩌면 그들은 힘든 투쟁을 하는지 모른다. 97년이란 긴 세월을 온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말글살이는 여전히 온갖 외세의 말들 틈바구니에서 고생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글을 외면하고, 영어마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기업들은 영어로의 창씨개명에 목을 매단다. 많은 사람들은 광복 60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말 찌꺼기와 외래어를 쉽게 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 수많은 우리말 지킴이들이 있고, 토박이말을 쓰려 애쓰는 누리꾼들이 있는 이상 한글학회는 힘들어만 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그들과 손을 맞잡고 더욱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으로써 한글학회는 우리 민족사에 우뚝 서는 단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