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은 왜 세계화의 조류에서 밀려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지금도 여전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저의는 무엇일까? 역사상 명확한 명칭이던 동해(또는 조선해)가 어느 순간 일본해로 둔갑한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와 20세기 세계를 분할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쓴 주강현(51) 한국민속연구소 소장은 '바다'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표면의 70%가 바다임에도 '해구'가 아닌 '지구'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육지사'만 있을 뿐 '해양사'는 없다. 그러나 주강현 소장은 '육지사'와 '해양사'는 물론 '중심과 변방'의 질서를 뒤집는 '생각의 전복'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제시한다.
지난 25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집필실 '정발학연'에서 주강현 소장을 만나 '해양사'와 '변방'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역사의 모습은 어떠한지 들어봤다.
독도문제는 수백 년 묵은 왜구들의 도발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에게는 한반도만 있었을 뿐 부속도서는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심심하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해양사적 인식 없이는 독도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독도 문제부터 꺼내는 주강현 소장은 독도 영유권 문제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해본 결과 그 뿌리가 15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해양을 둘러싼 '제국과 식민의 각축'에 닿아 있더라고 했다.
독도가 근래 1세기 안의 문제가 아니라 수백 년을 넘어선 '왜구들의 해묵은 도발'이라는 것이다.사람들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37번지', 즉 독도를 흔히 울릉도의 아들로 생각한다. 육지사의 관점에서 보면 울릉도가 독도보다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어 이 같은 관계설정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해양사 관점에서 설명하는 주강현 소장의 얘기를 듣고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독도가 생긴 것이 약 500만 년 전이고, 울릉도가 생긴 것이 200만 년 전쯤입니다. 누가 어머니이고 누가 아들인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죠. 그래도 강조하는 의미에서 말하면 나이가 많은 쪽이 어머니 아니겠습니까. 그것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면 한 가지 사실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해저에 있는 섬의 뿌리를 조사해보면 독도가 울릉도보다 훨씬 큽니다."
바다를 지킨 자 죽음으로 내몬 역사
우리 역사는 그동안 바다를 '갯것'들이 사는 천한 곳이라며 변방으로 여기고 홀대해왔다.
삼봉도(울릉도)를 다녀와서 그 실체를 말한 김한경이 극형에 처해지고, 일본에서 조선의 땅임을 확약 받은 안용복이 극형을 겨우 면하고 유배됐고, 또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33명의 독도수비대가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인식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극악한 해적에게까지 경(Sir) 호칭을 부여하며 해양제국 건설로 내몬 영국의 사례를 비교할 것도 없이 이렇듯 바다를 지켜온 자들을 예외 없이 죽이거나 죽음 직전으로 내모는 역사가 대체 어디 있었습니까."
해양사는 육지에서 바다까지 아우르는 단순히 역사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방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주강현 소장은 설명했다.
주 소장은 그 예로 변방이었지만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이면서 정한론의 온상지가 되었던 일본 조슈번(長州藩)을 들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 일본 군국주의사에 기록된 야마가타,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게, 하세가와 요시미치, 미우라고토 등이 모두 조슈번 출신이다. 명성황후 시해 주도세력이 '이토-이노우에-미우라'로 연결되는 조슈라인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작 이토는 알면서도 일본 육군의 수장이자 침략의 대부인 야마가타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조슈번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주 소장은 비판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침략자가 그냥 일본이라고 막연하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전범(戰犯)에는 무명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청산 타령을 하면서도 '그저 일본이 했다'는 식의 게으름과 타성, 무관심을 이젠 버려야 할 때입니다."
독도 분쟁에서 미국은 우리 편이 아니다!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지긋지긋한 전쟁이 왜구와의 전쟁입니다. 초원에서 일어선 칭기즈칸이 세계의 지축을 흔들었다면 왜구들은 지역이 넓지 않은 대신 천년을 두고 아시아를 괴롭혔습니다. 오죽했으면 문무왕이 죽어서도 왜구를 지키는 동해용왕을 자처했고, 박제상도 쓰시마에서 죽었을까요?"
아이누를 식민화시켰고, 류큐를 병합했고, 타이완을 식민지로 만들고 남양군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듯 끊임없이 먹어야만 사는 정벌론자들인 이 바다의 후예들은 왜구들처럼 배를 타고 누비고 다니며 독도를 침범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신왜구'라고 주 소장은 칭한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교과서 문제를 얘기하는 소위 일본의 양심들도 독도 얘기만 하면 입이 얼어붙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주강현 소장은 강조한다.
또 주강현 소장은 한·일간의 독도분쟁에서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환상 같은 것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도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미국이 일본의 독도지배를 마음 속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도쿄 맥아더 사령부의 시볼트란 작자가 독도를 일본에게 붙이려고 갖은 애를 쓰지 않았느냐고 주 소장은 반문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주 소장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는 지금 인천 자유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 동상만 얘기하지 우리 근대 문화유산인 최초의 등대가 서 있는 팔미도에 동상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켈로부대 후예들이 세웠지요. 그리고 맥아더의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필리핀 총독으로 필리핀 식민화의 주역이었던 아더 맥아더가 바로 더글라스 맥아더의 아버지입니다."
일장기 도로와 이순신 동상, 그 형용의 모순
주강현 소장은 또 진해라는 작은 공간의 식민지적 장기지속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하늘에서 진해를 내려다보면 도로가 영락없이 '욱일승천기'를 연상시키도록 방사선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이 계획적으로 도시계획을 그렇게 한 것이죠. 그런데 묘한 것은 도로 곳곳에 이순신 동상이 서 있습니다. 일장기 도로와 이순신, 그 묘한 이중창은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벚꽃도 즐기는 군항제로 대변되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 속에 충무공 동상이 서 있다? 이 형용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세계적인 검색 사이트 구글이 'East Sea'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일본 네티즌들의 한국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www.prkorea.com) 사이트를 해킹하는 등 일본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자, 한국과 가까운 곳에는 'East Sea'(동해)로, 일본과 가까운 곳에는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함께 표기해 놓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 직제에 해양수산부가 만들어진 때가 1996년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울러 주강현 소장이 지적한,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에 해양학과가 없음은 또한 무슨 이유일까.
우리가 갯것이라고 천시한 바다가 변방이었음을 드러내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나라 해양사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상징이 아닐까.
"제국과 식민, 그리고 근대의 명암을 가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였습니다. 이제라도 해양과 바다의 중요성에 눈을 돌려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쓴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가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해양사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주강현 소장은 예정돼 있던 강원도 지역 답사 여행을 떠나야 한다며 기자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주강현은 누구인가 | | | | 1970년대 진보적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화두였던 '두레'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주강현 한국민속연구소장은 십 수 년 동안 바다에 대해 연구하는 해양사가다.
영문과에 진학했다가 휴학과 복학, 제적과 복학 등을 거듭한 끝에 10여년을 넘겨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0년대 초 소외계층을 다룬 연극 <민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로 일약 내공을 인정받은 그의 저술행진은 <마을로 간 미륵> <굿의 사회사> <주강현의 우리문화 기행> <우리문화 21세기>에서 <북한의 우리식문화>를 거쳐 <조기에 관한 명상> <왼손과 오른손-억압과 금기의 문화사>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 <레드신드롬과 히딩크 신화>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 년에 절반 이상 밖에서 잠을 자며 답사와 탐사에 매달리는 주 소장은 해양사에 대한 천착이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의 원형을 복원하겠다는 포부다.
그가 건넨 명함에 적힌 그의 오지랖은 <해양과 문화> 편집주간을 비롯 '한국역사민속학회장'(비대학교수 출신 최초 학회장이라고 함), 한국해양문화재단 이사,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등이다.
자신의 키만큼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주강현 소장은 지금 '그 많던 명태가 어디로 갔을까'라며 <명태에 관한 명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