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정혜

ⓒ 김정혜

아버지의 기쁨은 의외로 컸습니다. 힘들게 몸을 움직이고 복잡하게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고 그저 단순하게 치약을 담는 일이다보니 바지런한 아버지의 천성과 잘 맞아떨어졌음인지 제법 손놀림이 빨랐습니다. 공장 사람들과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 받으셨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아주 신나게 따라 부르며 흥에 겨워하셨습니다.

점심시간. 집으로 향하던 아버지께서 기분 좋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미야! 내가 오늘 자장면 사줄까?"
"자장면 드시고 싶으세요?"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오늘 오전에 내가 자장면 값 벌었으니까 내가 번 돈으로 맨 먼저 에미 자장면 사주고 싶어서 그러지."
"오전에 아버지 얼마 버셨는데요?"

"왜? 오전에 일한 거 자장면 값 안 되냐? 그래도 괜찮다. 오후에 또 벌 거니까."
"아버지. 일하시는 게 재미있으세요?"
"그럼. 아주 재미있다. 나 내일도 또 따라갈란다."


ⓒ 김정혜

ⓒ 김정혜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시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으셨습니다.

"오후에 또 일하실 거라면서 옷은 왜 갈아입으세요?"
"오늘 이 애비가 돈 벌어서 에미 니 자장면 사 준 날이니까 에미 또 글 쓸 거 아니냐. 그럼 사진 찍어야지."


아버지의 그 말씀에 아버지도 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결국 오늘 점심은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장면을 드시는 내내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에미야! 이거는 이 애비가 오늘 오전에 일한 거로 맨 먼저 네게 사주는 거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기분 좋게 이 딸자식에게 한 턱 쓰시는 것이니 그 맛난 자장면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야 하건만 저는 애꿎은 잔기침만 자꾸 해대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가슴으로 젖어드는 아버지의 밝은 웃음도 걸리고, 물기 머금은 아버지의 촉촉한 두 눈동자도 걸리고, 아버지의 어깨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부모의 마음도 걸리고,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진 아버지의 자장면 그릇도 마음에 걸리고….

오늘.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