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鷄林)은 첨성대(瞻星臺)를 뒤로하고 옛 궁궐로 추정되는 궁터를 지나 곧바로 몇 개의 왕릉을 오른쪽으로 하여 조금만 지나면 나타난다. 이 숲에는 신(神) 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와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으며 최근에 심어진 것으로 보이는 보리수가 한때 어우러져 고목의 당당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또한 이 곳은 계림이라는 이름에서 보여주듯이 신라왕성인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강(誕降) 전설과 관계 깊은 곳이기도 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김알지 탄강신화를 보면, 탈해왕 4년 어느 밤에 호공(瓠公)이 월성 서쪽 마을을 지나 가는데 마을 옆의 시림(始林)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차 있었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숲 속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구름 속으로는 황금으로 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숲 속을 밝히는 그 광명은 황금궤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고 그 나무 아래에는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호공은 궁궐로 달려가서 이 광경을 탈해왕에게 고하자 왕은 즉시 시림으로 거동하여 궤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한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이 아이를 '알지(閼智)'라 이름하니 알지란 곧 우리말로 '아기'를 뜻으로 탈해왕이 '알지'를 안고 궁으로 귀환하는데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일 왕위를 파사(婆娑)에게 양보하고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다. '알지'는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金)으로 하였다.
그 후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 또는 仇刀)를 낳고 구도는 미추(味鄒)를 낳았는데 미추는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올라 신라 13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김알지 탄생일은 탈해왕 9년(65)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삼국유사와는 약간 다르지만 시림에서 태어난 알지 기록은 역시 같다.
계림이란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그렇게 했다 하며 후에 국명으로도 되었다. 시림은 신라의 신성림(神聖林)이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도 모두 위와 같은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은 약 100여 주의 고목이 우거져 있으며 비각내에 있는 비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의 탄생에 대한 설화가 새겨진 것이다.
비각내 비의 뒷편엔 우물터가 있는데 항시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다하나 지금은 덮어져 그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100여주의 고목이 웅장한 세월의 풍광을 자랑하는 계림은 고목에서 배어 나오는 오래되고 신선한 기운으로 하여 찾는 이의 정신을 맑게하여 이 숲이 신라에 의해 신성시 된 연유를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숲은 경주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19호로서 주변에 많은 유적지가 있고 접근하기가 편리하다. 주변의 유적지로는 첨성대와 왕릉들 그리고 대표적인 유적지 천마총이 있으며 안압지 반월성등 이미 많이 알려진 신라 유적이 밀집된 곳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계림 숲은 약간의 입장료(어른 500원)를 지불하고 들어서게 되면 유적을 설명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계림의 유례와 역사적 사실들을 자세히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