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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 겸 덕담으로 "선생님, 올 텃밭 농사 잘 되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지고, 내 집을 찾은 손님이 텃밭 구경을 하자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도 시험 뒤 성적표를 보자는 부모님 말씀에 낙제점을 받은 학생의 마음이리라. 올해는 텃밭 채소농사가 아니라 잡초농사를 지었다. 오죽하면 한 방송국에서 텃밭 구경 오겠다고 한 것조차도 완강히 거절하였으랴.
아무튼 올 농사는 말씀이 아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 겨울에 다친 다리도 올 봄까지 성치 못하여 치료차 서울에서 지냈고, 이곳에 내려온 뒤에도 다리를 핑계 삼아 늑장을 부렸다. 거기다가 올해는 둑에다 비닐도 덮지 않은데다가 한창 잡초가 돋아날 때 이런저런 바쁜 일로 때를 놓쳤다. 그런 가운데 오랜 장마철이 계속되었다.
장마가 그친 뒤 뒤늦게 텃밭을 둘러보니 잡초로 완전히 덮였다. 그제야 밭을 매려고 하니까 그나마 잡초 속의 작물까지 손상이 가겠고, 엄청 자란 이놈들을 뽑아내기에 여간 힘이 들지 않아서 그만 손들고 말았다. '그래, 저도 한철 살겠다고 태어났는데 밭주인 잘 만난 덕분으로 올 한해 잘 보내라'고 내버려뒀다.
올 텃밭 농사를 완전히 포기하고는 내년을 벼르는데 이따금 아내는 텃밭에 가서 잡초더미에서 호박도, 호박잎도, 가지도, 풋고추도 따오고 토마토도 따왔다. 나도 뒤따라 가보니까 잡풀더미 속에서 호박, 가지, 고추, 토마토가 죽지 않고 강인하게 자라고 있었다. 물론 다른 집, 잘 가꾼 텃밭의 작물과는 견줄 수는 없지만 잡풀 속에서도 그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 놈들을 따다가 반찬으로 후식으로 먹자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혔다. 토마토만 예를 들어도 이웃 비닐하우스에서 준 토마토와는 그 맛이 엄청 달랐다.
내 집 잡풀 속에서 자란 토마토는 크기도 작고 보기에도 거칠거칠하지만 그 맛은 이 세상 어느 토마토보다 더 맛이 있었다. 그것은 태평농법으로 자란 무공해 무농약 유기질 농법이기에 그 맛이 원시적이요, 토종 그대로였다. 토마토만 그런 게 아니고 고추도 가지도 옥수수도 그랬다.
그래 뒤늦게나마 잡풀을 조금 뽑아주고 열심히 드나들면서 맛있는 열매들을 거둬들여 잘 먹고 지낸다. 그럴 때마다 작물들에게 정말 염치가 없어서 미안한 금할 수 없다.
하늘의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
그런데 농업의 장래와 환경을 염려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우리나라 농사는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의 남용으로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요, 환경오염뿐 아니라 나아가 국민건강에도 적신호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다시 친환경 쪽으로 농법이 바뀌어야 국토도 환경도 더 이상의 오염을 방지할 수 있고, 생물도 사람도 모두 다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막상 시골에 내려 와서 보니까 요즘 농사는 사람의 손보다 기계나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우선 일할 노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시보다 뒤떨어진 농촌에서조차 이 자본주의 경쟁 시대에 살아남자면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보기 좋게 농사지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작물을 보기 좋게 더 많이 생산하자면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애써 농사를 지어도 풍작으로 값이 폭락하면 밭에서 채소를 뽑지도 않고 그대로 썩히거나 갈아엎는다.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차례 만나는 앞집 노씨를 요사이 한 달 남짓 만나지 못하였다. 그동안 나도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앞집을 찾지 않았고, 노씨도 무 배추 농사에 바빠서 나를 찾지 못했다고 하였다. 어제 만나서 그간 사정을 들어봤더니, 올 여름 무 배추농사는 기대한 만큼 값은 못 받았지만 다행히 모두 다 팔아넘겼다는데 당신에게 밭뙈기로 산 중간 업자가 무값이 폭락하자 뽑아가지를 않아서 가을배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농사도 투기처럼 돼 버렸다면서 내년에는 뭘 심어야할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이곳에 온 뒤 들판을 지나면서 농사짓는 걸 살펴보면 이 즈음에는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엄청 많이 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농촌에 일할 사람도 없고, 그렇게 기계화로 대량 생산을 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난날 웬만한 논에서 그 흔했던 메뚜기 개구리를 볼 수조차 없다. 그러자 뱀도 사라졌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환경오염이 매우 심각하다. 그런 까닭인지 점차 지구촌 곳곳에서는 자연재해가 심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하늘의 마음을 잃고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지고 편리함만 추구하는 추세다. 이런 추세로 그 모든 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가 자연을 학대하고 훼손한 만큼 하늘은 우리에게 끔직한 벌을 내리지나 않는지 자못 염려스럽다.
얼마 전에는 동남아에서 엊그제는 미국이 심한 자연재앙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메뚜기 개구리도 뛰노는 누런 황금 들판이 그립다. 사람들이 하늘의 마음을 읽고 하늘에 순응하면서 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2005. 9. 1.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사> 사진집을 우당기념관과 필자가 공동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