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리터당 1600원에 육박하는 휘발유 가격으로 인해 자가 운전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리터당 1600원에 육박하는 휘발유 가격으로 인해 자가 운전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석유 생산 설비가 몰려있는 멕시코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위력은 유가 급등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샐러리맨들을 한숨 쉬게 만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일 급기야 국제 석유 수급난 해소를 위해 26개 회원국에게 하루 200만 배럴씩 30일간 6000만 배럴의 전략 비축류를 방출토록 결정했다.

기름 값 올라 괴로운 사람들

영업용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P(31, 남)씨. 94년 수동식 액센트를 모는 그는 몇 십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집 앞에서 리터당 1482원 하는 주유소를 발견하고, 그 곳에서 기름을 채우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그는 한 달에 35~40만원 정도를 기름 값으로 사용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면 보통 33리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리터당 기름 값이 1500원이 넘은 뒤에는 5만1000원 정도는 줘야 풀(Full)로 채울 수 있다. 가득 채울 수 있는 가격이 4만원 대에서 5만원 대로 훌쩍 넘어섰다.

P씨 직장 동료 가운데에는 오른 기름 값 때문에 출퇴근은 대중교통으로 하고, 자동차는 영업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비싼 기름 값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예전에는 가득 채우면 3일 달릴 수 있었는데, 요즘은 2일 반밖에 사용할 수 없다. 기름 값이 1800원까지 오른다고 하는데, 업무상 차를 안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원비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다."

금천구 독산동에서 경기도 안양으로 출퇴근하는 직장 6년차인 H(30, 여)씨. H씨의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는 10km 정도. 2003년 1월부터 1500cc 아반떼XD 운전을 시작한 그는 요즘처럼 기름 값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다.

차를 처음 구입했을 당시 한 달 기름 값이 12~13만원 수준이었는데, 리터당 기름 값이 1500원 남짓한 최근에는 18~20만원을 기름 값에 사용한다. H씨는 기름 값이 오르자 주말 자동차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주말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기름 계기판이 움직인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직장까지 대중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할 수 없이 차를 사용하지만, 기름 값이 2000원이 넘는다면 출퇴근 이외에는 자동차를 절대 가지고 다니지 않을 생각이다."

H씨는 고유가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 변하지 않는 원칙을 정했다. 기름 값이 비싼 서울에서 절대 주유를 하지 않는 것. 그는 직장이 있는 안양의 한 주유소를 정해 그 곳에서만 기름을 넣는다. 수시로 기름 값까지 체크해 두고 있다.

그는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끼는 것 말고는 별로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사 휘발유에 눈이 가는 이유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자 휘발유값을 아끼기 위해 시민들이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면서 평소와 달리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주차장이 차량들로 가득 차 있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자 휘발유값을 아끼기 위해 시민들이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면서 평소와 달리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주차장이 차량들로 가득 차 있다. ⓒ 연합뉴스 백도인
출퇴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주말에만 자동차를 이용하는 직장인 S(34, 남)씨. 2000CC급 자동차를 타고 있는 S씨는 9월 3일 오후 경기도 일산쪽에서 주유소를 찾았다가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할인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주요소를 찾았지만 기름 가격은 리터당 1550원.

"평소에 3만원 내지 5만원씩 주유를 했는데, 기름 가격이 너무 올라서 2만원 어치만 넣었다. 파주에서 송파구 잠실쪽으로 달렸는데, 기름이 거의 바닥 났더라."

S씨는 "기름 가격이 너무 올라 심리적 압박을 느낄 정도"라면서,"왜 많은 사람들이 유사 휘발유를 찾는지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S씨는 "요즘 고속도로를 달리면 길 한 쪽에 있는 '휘발유 싸게 사세요'라는 문구를 자주 접하게 된다"면서, "영업용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유혹을 느낄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름 값에 부과되는 세금을 낮추는 것도 '기름 값 압박'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재경경제부의 따르면, 8월 둘째 주를 기준으로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와 경유의 평균 가격은 1449.20원과 1149.50원이다.

2004년 평균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1365원과 908원에 비해서 84.2원, 241.5원이 올랐다. 2003년 휘발유가 1280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2년 사이에 200원 정도 가격이 상승했다.

서울 지역의 경우 휘발유 가격이 1500원대를 넘어서 1600원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2년 사이에 체감 휘발유 가격 상승액은 300원에 이른다.

이 같은 휘발유와 경유 인상은 지속적인 국제유가 상승세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유류세 인상도 큰 원인 가운데 하나다.

2005년 8월 둘째주를 기준으로 했을 때 유류세는 휘발유가 870.21원(60%), 경유가 549.59원(47.8%)에 달한다. 이로 인해 지난해 국세 중 유류세 비율이 5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4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휘발유 경유 등 유류에 부과된 교통세와 특별소비세 교육세 등의 세수는 21조4571억원으로, 2004년 전체 국세 세입 액의 18.2%에 이른다.

'아끼자' 말고 다른 방법 없나

이 때문에 서민부담 경감을 내세워 한나라당에서는 유류세 10%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유류세 인하가 급격한 세수 감수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IEA가 1991년 걸프전 이후 15년 만에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가운데, 고유가를 대비해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에너지 종합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에너지 정책기획단'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장기적인 에너지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승용차 10부제 강제실시나 찜질방 등 영업시간 제한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연대 정책위원은 "일반인들에게 절약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고유가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않는다"면서, "유가에 붙어 누더기처럼 부과된 여러 가지 세제를 개편해 에너지 수요 관리를 위한 자금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광훈 정책위원은 "에너지 정책이 다른 경제적 이해 관계에 휘둘려, 고유가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단기적인 처방을 해서는 '아끼자, 절약하자'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