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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사장, 42×35cm
빌립보서 사장, 42×35cm ⓒ 김명실
"그때는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이 서집(書集)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제자들, 출판사, 표구사 여러분들의 사랑과 마음이 모아져서 선생님께서 쾌차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두려운 마음과 기쁜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의 제자에게 가장 기뻤던 것은 "선생님께서 이로 인해 끈을 잡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신 것"이었다.

작품집을 처음 받아 들고 던진 첫 마디가 "글씨가 좋아야지"였다. 그만큼 작품 세계를 정리해 본다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중요했다. 병중에서도 창작과 작품에 대한 깊고 간절한 열망이 병세를 호전으로 이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하는 제자는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것 같아 보였다.

전시 전체를 진행한 봄샘 박정자씨는 자신의 전시회, 작품집보다 더 큰 부담감과 어려움으로 스승의 전시회 출품 작품을 고르고, 작품집 편집을 하였다고 한다.

2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서집에 수록한 작품은 50여 점, 이 중에서 31점이 전시되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작품으로 선별하였다. 다만 대작이 상당히 많았으나 전시장 사정으로 인해 대작을 많이 전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성경 구절에서 많이 선문하여 작품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성경 구절 작품이 많은 편입니다. 서체별로는 궁체 정자, 흘림, 반흘림 등의 작품이 있고, 구성상으로는 병풍, 가리개들도 있으며, 대작, 소품 등의 형태로 가려 뽑았습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서력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느끼고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측면에서 준비했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는 회갑전 준비를 하였던 듯싶다. 전시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10년이 지나 고희기념전이 되었는데, 결국 이번 전시는 10년 이상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온 셈이다.

"사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정말로 안타까웠어요. 아프지만 않으셨으면 정말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선생님의 마음에 드는 작품, 전시의도에 따라 선별하고 정된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을 텐데…"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제자의 가슴에는 벅찬 감회 못지않게 쾌유한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채워져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천상병 님 시 귀천, 89×33cm
천상병 님 시 귀천, 89×33cm ⓒ 김명실
서예평론가 농산 정충락씨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명징하게 정리하였다.

"목락 선생의 글씨 속에는 선생의 단정하고 반듯한 평소의 언행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래서 더욱 좋다. 또 있다. 작품을 살펴보면서 느껴지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생의 무거운 침묵의 생활태도가 멋지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정도만을 고집하면서 주변에 한눈 돌리지 않으며 걸어온 작가의 성품이 작품에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의미리라.

"선생님의 서예 활동 40년을 정리하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또 선생님의 이번 고희전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보아요. 악화한 병세에서 쾌유하셔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크고요. 선생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강물에 빈 배가 떠 있는듯한 허전함을 느꼈어요."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묻자 제자는 그렇게 답하였다. 같은 길을 가면서 제자는 스승에게 길을 묻기도 하였고, 스승은 같은 길을 가는 제자가 믿음직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승은 '인생의 산을 타면서' 때로 어두운 길을 갈 때 앞길을 밝혀주는 전조등과도 같은 '서예'의 불빛을 이 전시회를 통하여, 또 앞으로도 계속 더 환하고 더 멀리, 제자들의 앞길까지도 비춰주고 싶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작가 목락 김명실은 1936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하여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갈물한글서회 회장,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초대작가 회장, 한국미술협회 재정분과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서예대전, 통일서예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전임 대통령 및 서예가 100인 초대전, 서울국제서예초대전 등에 출품하였다.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 9월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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