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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이는 다리 난간에서 찍은 용주골 집창촌 모습. 개울 건너 집창촌을 막은 담장에 그린 그림이 왠지 안쓰럽다.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 난간에서 찍은 용주골 집창촌 모습. 개울 건너 집창촌을 막은 담장에 그린 그림이 왠지 안쓰럽다. ⓒ 한성희
정확하게 용주골 전부가 집창촌은 아니다. 연풍리 삼거리에서 광탄 방향으로 작은 개울을 건너면 오른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곳이 집창촌이다. 연풍리 주민들에게 집창촌은 별개 지역이다. 집창촌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오는 '고객'과 집창촌에서 허가를 받은 보따리 장수다. 화장품이나 옷 등을 가지고 들어가서 판다고 한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집창촌에서 종사하는 여성들이 줄어들었다지만 집창촌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다. 파주시에는 속칭 용주골(파주읍)과 법원읍 대능리, 두 곳에 집창촌이 있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예전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이고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 하던 여성들이 거주했으나 미군부대가 철수한 뒤 한국군 부대가 옮겨오고 다시 군인을 대상으로 성매매가 성행했던 내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두 지역 집창촌 현재 주 고객은 군인들이 아니다.

집창촌 골목 앞에 있는 간판.
집창촌 골목 앞에 있는 간판. ⓒ 한성희
용주골 집창촌에 60여 가구가 있고 한 집에 평균 15개의 방이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많으면 1천 명이고 평균 500명 정도일 거라고 시민단체에서는 추산한다. 경찰 추산은 300명이다. 시민단체에서 집창촌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은 손에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거나 하면 안 되고 빈손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고 한 단체관계자는 말한다. 그만큼 예민한 지역이다.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전인 작년 초 집창촌에 들어가서 직접 여성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노예처럼 갇혀 있다'고 잘못 알려진 내막을 취재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그 권유를 받고 집창촌과 관계 있는 사람을 만나 밤중에 짙게 선팅된 차를 타고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다.

뒷좌석에 숨듯이 앉아 천천히 보니 오색불빛 조명 아래 얇은 옷을 걸치고 앉아 있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나를 태워 집창촌에 들어간 사람은 자신도 이곳 성매매 사업(?)에 간접으로 관계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이곳에 오는 여자들은 빚을 져 그것을 갚으려고 자발적으로 온 사람이 거의 다입니다. 빚을 갚고 나면 떠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자도 많고 계속 머무는 여자들도 있지만 보통 2~3개월이면 이곳을 떠나지요. 2~3개월이면 이곳에서 생명이 끝납니다."
"그 다음에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로 가지요?"
"이곳에서 3개월이면 더 이상 몸이 버틸 수 없어요. 다음에 그 여성들이 가는 곳은 술집으로 봐야겠지요. 아니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든가."

근처 10여개 상가에는 이런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근처 10여개 상가에는 이런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한성희
기자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관동대 의료봉사단이 파주성상담센터와 함께 무료진료를 한다기에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주 목적은 집창촌 여성들의 보건진료였지만 과연 오겠느냐는 내 말에 지속적으로 시행해 차츰 거리감을 좁히겠다고 권오영 성상담센터소장은 말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지나면서 보니 임대를 알리는 쪽지가 붙은 텅 빈 상점만도 10여 개가 넘었다. 집창촌이 근처에 있다고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건 거의 없다고 이곳 상인들은 주장한다. 집창촌 여성들이나 관계자들이 놀러가거나 외식을 할 때 일산이나 서울로 차를 타고 나가버려 이곳에서 밥을 사먹거나 물건을 팔아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관동대 의료봉사단의 진료 풍경. 성매매 여성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동네 주민들만 100여 명 진료를 받았다.
관동대 의료봉사단의 진료 풍경. 성매매 여성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동네 주민들만 100여 명 진료를 받았다. ⓒ 한성희
무료진료 장소에 가니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은 많았지만 예상대로 집창촌 여성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전문의 5명이 분주하게 진료 중이었는데 찾아온 사람은 나이든 연풍리 어르신들과 주민뿐이었다.

겉으로 보면 보통 거리와 다를 바가 없으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곧장 집창촌이 시작된다.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여인이 나타나 필름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겉으로 보면 보통 거리와 다를 바가 없으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곧장 집창촌이 시작된다.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여인이 나타나 필름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 한성희
취재를 마치고 다시 집창촌을 지나가면서 서 있는 차들을 보니 전남, 서울 등 외지 차량이 대부분이었고 파주 차량은 단 한 대뿐이었다.

한때 대한민국 달러 수입의 30%가 흘러나온다는 소리가 돌 만큼 북적거리던 용주골은 70년대에서 정지한 듯 상점이나 거리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영어로 간판을 장식하던 상점들이 한글로 바꿔 달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이곳 경제는 죽어버린 지 수십 년이다.

다리를 지나던 도중 거리 전체 사진을 찍고 나자 어디선가 득달같이 나타난 여인이 필름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마 아까 사진을 찍으면서 지나갔던 여자가 다시 나타나 사진을 찍는다는 소식이 들어간 모양이다.

여러 골목 중 비교적 넓은 골목. 군데군데 불이 켜져있다. 의료봉사 취재를 가는 도중 찍은 사진.
여러 골목 중 비교적 넓은 골목. 군데군데 불이 켜져있다. 의료봉사 취재를 가는 도중 찍은 사진. ⓒ 한성희
거리는 조용했다. 사람이 드문드문 있는 삼거리에 이르자 조금 안심이 됐다. 앞에 보이는 택시를 집어타고 달아날까?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오기도 생기고 마음도 진정시킬 겸 근처 가게로 들어간 지 1분도 안 돼 그 여인과 한 청년이 들이닥쳤다.

"빨리 필름 내놔요! 사생활 침해해도 되는 거야?"
"아줌마 얼굴 찍은 적도, 집을 찍은 적도 없는데요. 거리를 찍었을 뿐인데 왜 사생활 침해인가요?"

두 사람은 기세등등하게 소리 지르고 난리를 쳤다. 가게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했기에 나가자고 했다. 청년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가씨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지금 시간이 오후 5시 조금 넘었고 4시 45분경에 지나가다 본 집창촌은 불이 거의 꺼져 사람 그림자도 못 봤는데 무슨 소리인가.

이 사진 역시 가는 도중 찍은 좁은 골목.
이 사진 역시 가는 도중 찍은 좁은 골목. ⓒ 한성희
디카에 찍힌 것이라야 골목과 거리 풍경뿐이니 보여주면 누그러질 듯싶었지만 이런 태도로 나오는 두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분명히 안 찍었다고 했죠? 당사자 허락 없이 사진을 보도하면 우리도 법에 걸립니다."
"디카인가요? 그럼 보고 삭제를 하면 되는데. 아가씨들이 얼굴 알려지면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볼까봐 곤란하거든요.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 많아요."

골목마다 인기척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골목마다 인기척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 한성희
차분해지고 공손해진 청년의 말에 나도 화가 누그러졌다. 아가씨들 사진을 찍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사진 몇 장 찍는다고 집창촌 기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나가는 김에 자료사진으로 쓰려고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찍은 것이었다.

여인의 고함소리를 듣고 다리를 건너오면서 혹시 카메라를 빼앗길까봐 집어넣었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청년에게 확인을 시켰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살피던 청년은 크게 찍힌 건물 사진 하나를 삭제해 달라했고 나는 순순히 보는 앞에서 삭제했다.

"얼굴 찍은 건 하나도 없네요."

청년이 여인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여자 구경도 못했는데 찍힐 리가 있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돌아서는 청년과 함께 가던 여인이 돌아보더니 나를 노려보면서 청년에게 다시 한마디 던졌다.

"좀더 깊이 조사해봐!"

두 사람이 가버리는 모습을 보다가 맥이 풀려 다시 가게로 돌아가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아버렸다. 가게 주인 아줌마가 걱정하면서 위로했다. 그쪽 동네는 알지도 못한다며 집창촌이 있어서 장사에 보탬 되는 건 없다고 했다. 불과 200~300m 떨어진 개울 건너 그곳은 이곳 주민들에게도 다른 세계였다.

가게를 나왔을 때 권오영 소장이 차를 몰고 다가왔다. 쓰러지듯 차에 오르자 내 표정을 본 권 소장이 놀란 듯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동네 예민한 곳이야. 함부로 카메라 꺼내들고 다니면 안돼."

권 소장의 말을 들으며 그들에게 닦달 당하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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