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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씨의 득남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3일자 2면.
박지만씨의 득남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3일자 2면. ⓒ 한국일보 PDF

박지만씨의 득남을 보도한 <중앙일보> 13일자 15면.
박지만씨의 득남을 보도한 <중앙일보> 13일자 15면. ⓒ 중앙일보 PDF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것 같아 잠깐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심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인 지만씨가 어제 득남을 했다. 축하할 일이다. 비명에 간 대통령의 아들로서 불행과 방황을 거듭하다가 얻은 기쁨이기에 그 감도는 클 수 있다. 공감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하지만 매사엔 한도가 있는 법이다. 축하도 축하 나름이다. 개인사와 국가사는 나눠야 하고, 축사와 찬사는 구별해야 한다.

너무 심하다는 얘기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의 축사는 너무 지나쳤다.

<한국일보>는 득남 소식을 2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국민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등이 인물면에서 '화제'로 취급한 데 반해 <한국일보>는 2면 종합면의 스트레이트, 그것도 가장 비중이 큰 '뉴스'로 취급했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 <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통박스까지 할애해 비중 있는 '사회 뉴스'로 처리했다.

이들 신문의 기사에서 지만씨의 득남 소식이 국가적 대사로 취급되어야 할 이유는 찾을 수 없다. 그저 지만씨의 '감격'과 그의 누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환호'만 읽힐 뿐이다.

이들 신문들이 왜 개인적 경사에 불과한 일을 국가적 경사로 취급하는지를 읽을 수 있는 단서는 딱 하나다. 큼지막하게 그려 넣은 '박정희가(家) 가계도' 앞뒤로 붙인 기사 한 구절이 그것이다. "지난해 말 지만씨가 늦장가를 가기 전에는 주변에서 '이러다 박 전 대통령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지만씨가 득남을 해 '박정희가(家)'가 대를 잇게 됐으므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넌센스다. '공화국 언론'이 '군주국 언론'과 같은 보도 태도를 보인 것 자체가 넌센스고 코미디다. 국가원수의 지위가 대를 이어 상속되는 군주국이 아니고서야, 또 '박정희가(家)'가 왕가가 아니고서야 '3세'가 태어난 사실이 주요 뉴스로 취급돼야 할 이유는 없다.

그 뿐인가. "대를 이었다"라는 표현은 또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뿐 아니라 지만씨의 득남 소식을 '화제'로 취급했던 다른 신문들도 '화제'의 초점을 "박정희가(家) 대를 이었다"는 데 맞췄는데, 보도 내용중엔 이런 것도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전처 김호남씨 사이에 태어난 딸 재옥씨가 한병기 전 국회의원과 결혼해 자녀를 두긴 했지만 외손자이다."

이들 신문의 설명인 즉, 가계의 '법통'은 오직 직계 아들과 손자를 통해서만 이어진다는 얘기다.

참으로 퇴행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다. 지난 2월 부계 혈통주의를 토대로 한 호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도 이들 신문에겐 그리 큰 고려사항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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