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버이가 생각나게 하는 상사화
어버이가 생각나게 하는 상사화 ⓒ 장옥순
가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상사화는 지천으로 피어 있고
화단에서 개울 소리를 들으며
비를 맞는 꽃들은
달님을 기다리는 산골 분교의 교정

아끼는 분이 보내주신
바이얼린과 현악 앙상블을 위한, "Come In!" 을
듣다보니 어느 새 바깥은 밤이 내려와 앉아 있다.

오늘도 교실이 내 방이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들이
책상 밑에서 수런거린다.

늦은 시간까지 도서실에서
책들과 놀다간 아이들도 집으로 가고
홀로 남은 교실에서

가을 빗소리를 배경삼아
음악과 책으로 벗을 삼는
철없는 늙은 소녀는

추석이 오는 것도,
가을이 가까이 오는 것도
상사화가 그렇게 고운 것도
가을 비가 그리움을 몰고 오는 것도
그대로 보낼 수 없어 자판을 귀찮게 한다.

산골 분교에 가을 비가 오는 저녁, 장옥순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고 한 M.프루스트의 말을 상기해 보며 아직도 새로운 시야의 지평을 크게 넓히지 못하고 사는 내 삶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가을 밤입니다.

날마다 보는 풍경과 사람이 똑같은 것 같지만 4차원의 세계에 대입시켜 보면 한 순간도 같지 않음을 간과한 채 깨달음 없이, 일상적으로 적당히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게 하는 계절도 가을입니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는 법구경을 잠들기 전에 마음 복판에 새기고 꿈 속에서라도 각인시켜 보고 싶은 것도 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이 가을에는 영영 뵈올 수 없는 어버이의 모습을 상사화처럼 그리워하며 눈물을 삼키는 추석이 있어 아프고 마음 저리지만 그래도 눈을 들어 사랑해야 할 가족과 이웃들에게 눈부처가 되기를 다짐하며 그리움을 묶어 세상으로 보내려 합니다.

작은 손길로 기쁨주는 사람 노릇을 하며 살아온 빚을 갚고 싶습니다. 내 것이 20개라면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과 사물들이 80개임을 다시 복습합니다.

덧붙이는 글 | 추석을 앞둔 이 가을에 그리운 이름으로 남은 어버이를 생각하며 다 하지 못한 불효에 아파하며 어버이가 살아계신 이들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 어버이라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