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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 홈페이지
<서동요> 홈페이지 ⓒ SBS
우선, 주목할 점은 최근 사극의 추세가 갈수록 고대사로 간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오백년> <용의 눈물> <허준> <대장금> <다모>는 모두 조선 시대였다. 그간 사극이라고 하면 대개 조선시대를 떠올릴 만큼 사극하면 조선을 배경으로 했다. 근래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최근에는 아예 사극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대사에 돌아섰다. <해신> <서동요> <삼한지> <태왕사신기> <대조영> <연개소문> <고선지> <대무신왕> 등은 모두 고대사와 관련한 드라마들이다. 이러한 고대사에 대한 집중은 <다모> 그리고 <해신> 이후에 더 활발해졌다. <해신>은 음악, 의상, 인물구도, 특수효과, 활극 방식 등이 모두 퓨전, 잡종화를 보인다. 한때는 트렌디드라마가 유행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역사 드라마가 큰 흐름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트렌디 드라마와의 상관성을 들 수 있다. 일단 소재 면에서 트렌디드라마는 한계에 이르렀다. 사랑과 이별, 불륜,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재벌 2세,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이 순환되어 반복 등장하고 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식상해 하기 마련이다. 최근에 이런 유형의 드라마 중에 성공한 예가 없다. 특히 젊은 신세대 주인공의 트렌디드라마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더구나 근본적으로 트렌디드라마는 중장년 여성, 남성 층을 배제시키기 일쑤다.

역사드라마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가능성을 확장하여 왔다. 최근의 역사 드라마는 정통 사극이 아닌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 시청자 층을 넓게 아우르고 있다. 사극에 멜로를 가미하여 여성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단순화된 인물 구도에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호쾌한 활극이 기본이 되었다. 여기에 음악이나 미술, 의상, 특수효과를 현대화하고 퓨전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10대에서 노인층,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즉, 역사드라마를 잘 활용하면 다양한 계층의 시청자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

두 번째는 불안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사회에서는 역사를 통해 현실에서 필요한 사고와 행동을 모색한다. 역사 드라마의 붐은 이러한 맥락이다. 새로운 전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의 모순과 문제들을 역사적 사실에 대입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리더십을 찾으려 했다. 또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사람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면서 지금 동시대의 현실과 동일한 상황을 통해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해신>에서는 동아시아의 해상왕, 장보고를 통해 한반도를 벗어난 동아시아 성을 보여주려고 했다.

<대장금>에서는 장금이라는 여성의 일대기를 통해 음식과 삶의 문제를 잘 버무려 냈다. 현재 음식만큼이나 우리의 고민의 대상이 아닌 것도 없다. 철학이나 성찰이 없는 음식 문화를 거꾸로 일깨웠다. 그간 남성 중심의 사극에서 여성적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 번째 제작 측면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 거리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다. 현대물을 다루는 것보다 창작 측면에서 자유성이 더 있다. <다모>나 <대장금>의 경우에는 얼마 안 되는 역사자료를 통해 큰 줄거리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이끌어 내었다. <해신>의 경우에도 역사적으로 거의 기록이 없는 장보고를 스케일이 매우 큰 차원에서 복원하기도 했다.

고대사로 갈수록 상상력의 자유성이 보장된다. 사료가 거의 없는 역사적 인물과 시대는 작가적 상상력이 더 개입할 수 있고, 작가들의 역량이 발휘되고 삶에 대한 성찰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이러한 사극은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최근 사극 드라마의 큰 역할 중 하나는 역사적인 인물과 인터넷의 결합이다. 예를 들어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 그동안 흩어져 있던 이순신에 관련한 많은 역사적 사실과 담론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그 속 장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드라마와 인터넷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다른 드라마들보다 집중성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장보고나 왕건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 신돈과 광개토대왕에 대해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이러한 점을 일부러 고려하는 면도 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나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을 선정해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자체가 홍보 효과에 좋고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사극은 궁궐 중심, 권력 암투와 궁중야사, 조선시대 역사극이 많았다. 정치적 권력 싸움이 사극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재의 범위도 넓어졌고, 형식도 다양해 졌다. 퓨전화, 소재다양화, 여기에 대형화가 사극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해신> <다모> 같은 경우는 정통 사극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미해 '퓨전 사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불멸의 이순신>이나 <서동요>에도 이러한 면이 있다. 퓨전 사극은 소재의 다양화로 사극에 친숙하지 않던 여성, 젊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의 여형사라는 다모, 수라간 나인에서 최고 직위에 오르는 장금이 이야기, 천민 노예 출신이 해상왕이 되는 과정과 그것에 얽힌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대장금>은 여성들과 어린이들도 사극을 폭발적으로 보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도록 했다.

또한 점차 사극이나 대하드라마도 대형화 되고 있는 추세인지 오래다. <해신>은 50부작이었고 <불멸의 이순신>은 104부작이었다. <서동요>는 70부작이고, <신돈>도 마찬가지 분량이다. <태조 왕건>은 200부작이었다. 특히 <불멸의 이순신>은 350억에 170명의 연기자, 4만4200여명 보조출연자가 동원됐다. <해신>은 180억원, <신돈>은 170억원의 예산이 잡혀 있다. <서동요>는 부여와 익산 세트 제작비에만 각각 75억원과 30억 원, 회당 제작비만 1억7000만원이라 총180억 원 이상 투입된다. <태왕사신기>는 250~3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 소재의 다양화 퓨전 사극화에 좋은 점, 그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소재 다양화와 퓨전화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준다. 현실을에서 색다른 모색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나치면 현대적 관점이 너무 많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시대적 상황이나 당시 사회의 의미, 맥락을 놓칠 수 있다.

대형화는 장대한 스케일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형화라는 측면을 볼 때 많은 제작비를 들인다고 좋은 작품이 되거나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것은 아니다. 작품성 보다 제작비를 더 고려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특히 대하 드라마는 무조건 제작비가 많이 들어야 한다는 기형적인 논리가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적 해석과 드라마의 깊이, 성찰이 중요한 것이지, 제작비가 시청자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해석과 성찰의 대하이지, 제작비의 대하는 아닐 것이다.

역사드라마는 사건을 재현하는 일, 단순히 복원이나 모방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듯싶다. 진실 혹은 현실적 의미들을 새롭게 해석해 내는 것이다. 상징적이거나 회화적, 혹은 언어, 수, 통화 체계와 같은 구조적인 재현을 넘어서는 상상적이지만 현실적인 설득력의 재현이다.

역사적 재현이라는 것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없을 것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개연성 있게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만큼 매우 창조적인 작업이기에 단순한 재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재현의 작업들이 흔히 매우 좁은 범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불멸의 이순신>은 감정적 민족주의에 갇혀서 동아시아 혹은 보편성을 얻지 못했다. 앞으로 고대사를 다룰 경우에는 감정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치우친 드라마들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특히 고구려사와 그 당시의 인물을 다룰 때 더욱 그럴 가능성이 짙다.

한류를 생각할 때 동아시아 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역사드라마도 한국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상도> <허준>, <대장금>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사극들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동아시아성, 보편성을 얻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들 모두의 고민과 삶을 우려내는 역사 드라마가 진화의 지향점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gonews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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