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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이보시오.”
움막구석에 자리를 잡고 곤히 자던 장판수는 사냥꾼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다. 벌서 날이 밝았나 싶었던 장판수가 부스스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밖은 어두웠다.
“무슨 일입네까?”
“남한산성에서 여기까지 당신을 만나러 온 사람이 있소.”
그 말에 장판수는 화들짝 놀라며 거의 본능적으로 칼을 넣어놓은 봇짐으로 손을 뻗었다.
“왜 그리 놀라시오? 내가 진작에 장초관을 해치려 했다면 벌써 손을 썼거나 이제서라도 술에 독이라도 탓을 것이외다. 허허허”
칼집을 잡고 있는 장판수의 앞에는 언제부터인가 두청이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장판수와 더불어 술을 마셨던 사냥꾼들과 서흔남이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은근히 바라긴 했지만 그래도 난 장초관이 정말 이리로 올지는 몰랐소이다.”
두청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장판수 앞에 철퍼덕 앉았고 사냥꾼들은 새로 구운 꿩고기와 술을 앞에 놓아두고서는 두청의 뒤에 병풍마냥 우뚝 섰다. 두청은 그들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거만한 태도로 술병에서 꿀럭꿀럭 사발에 술을 가득 담아 장판수에게 내밀었다.
“됐소이다!”
장판수는 퉁명스럽게 술잔을 거부했지만 두청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술잔에 술을 가득 담은 후 죽 들이키고 꿩고기를 게걸스럽게 으적으적 뜯어먹었다. 두청은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소매로 쓰윽 닦은 후 다시 한 번 술잔을 채워 술을 들이켰다.
“장초관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서 산등성이를 둘이나 넘어오느라 목이 좀 컬컬했네 그려.”
두청이 한번 손을 휙 하니 내젓자 뒤에 서 있던 서흔남과 사냥꾼들이 움막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장판수는 다소 긴장을 늦추고 두청의 행동을 조심스레 주시했다.
“그래 앞으로 어찌 하실 참이오?”
장판수는 두청의 말 속에 숨은 저의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이 자가 아직도 날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속셈인가!’
장판수는 두청의 말에 말려들지 않도록 첫마디를 흘려보내야겠다는 작정을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 걸 물어봐서 뭘 어쩌겠다는 것입네까?”
두청은 피식 웃으며 장판수에게 다시 한 번 술잔을 권했다. 이번에는 장판수도 거부하지 않고 술을 받아 죽 들이켰다.
“남한산성의 일은 참으로 유감이 많았소이다. 허나 어찌하겠소? 장초관이 우리의 속사정을 알지 못하며 뜻하지 않게 훼방을 놓으니 그리된 것이외다. 너무 괘념치 마시오.”
이번에는 장판수가 두청에게 피식 웃음을 날렸다.
“괘념치 말고 자시고 그런 거 없습네다. 내래 눈앞에 닥친 일을 헤쳐 나갔을 뿐이외다. 그리고 당신들이 오랑캐들에게 득이 되는 일을 꾸미니 더욱 세차게 헤쳐 나갔던 것이고!”
“그것이 실은 오랑캐들에게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면 어찌 하겠소?”
장판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에 가득 어이없다는 뜻을 담아 두청을 쏘아보았다. 한마디 말보다 더한 도발이었지만 두청은 술잔에 가볍게 입을 댄 후 말을 이어나갔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도착한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것이오.”
두청이 잠시 뜸을 들였지만 장판수는 여전히 두청의 말을 무시하듯 쏘아볼 따름이었다.
“임금을 시해하려는 무리들과 같이 싸운 적이 있지 않았소? 그 일은 내가 꾸민 일이외다.”
장판수의 눈에서 두청을 깔보는 기운이 사라지고 대신 당혹감이 감돌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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