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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집까지 욕조를 나르고 있다.
환자집까지 욕조를 나르고 있다. ⓒ 김재경
여성은 목욕용품을 챙기고 남성들은 욕조를 만들어 허름한 주택의 어둠침침한 지하로 내려갔다.

"안녕하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좁은 방안에 깔판을 깔고 욕조를 설치하며 보호자와 나누는 짧은 대화는 끈끈한 사랑이었다. 눈만 뜨고 누워있는 나 아무개(남·45)씨는 전신마비였다. 간호사는 환자의 코에 부착된 줄을 살피며 혈압을 체크했다. 창문 너머로 부산하게 차량 호스가 연결되고, 전기 스위치를 꽂으며 욕조가 설치되었다.

환자를 비스듬히 하고 비닐을 깔았다. 봉사자들은 비닐 네 귀퉁이를 맞잡고 욕조 그네 위로 환자를 옮기며 "목욕하고 개운하게 명절을 맞아야지요"한다.

봉사자들이 환자를 씻기고 있다.
봉사자들이 환자를 씻기고 있다. ⓒ 김재경
더운물이 샤워기를 통해 쏟아지며 머리를 감기고 하반신을 닦는다. 행동이 어찌나 민첩한지 잘 훈련된 개미 군단을 보는 듯 했다. 봉사자 다섯 명이 손가락 발가락 하나 하나까지 마사지하듯 어디를 닦아도 환자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다.

"행복하세요?"

봉사자의 물음에 환자는 눈동자를 굴리려 애쓰는 모습만이 역력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환자를 침대에 옮기며 욕조 철거까지 40분이 후딱 지났다.

환자의 아내는 "이 분들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고맙지요. 5년 전 퇴근길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히려 혈육들한테 서운하고 속상할 때가 많아요. 병구완에 지쳐 온 몸이 아파도 누워있는 남편을 두고는 꼼짝할 수 없으니…."하고 말한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간호사가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간호사가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 김재경
다음 차례 역시 담 하나 사이로 대문을 마주하는 집이었다. 벌집처럼 셋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비좁은 지하 공간은 욕조를 들여 놓기에도 애를 먹었다. 방안에는 검푸른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 악취까지 진동했다.

여성 봉사자들은 "서울로 이사 가신다며? 어이구 섭섭해서…. 오늘이 마지막 목욕이네" 하며 암울한 기분을 떨치려고 애를 썼다. 뇌출혈로 쓸어졌다는 박 아무개(여· 60)씨 곁에는 재가 봉사도우미가 있었다.

간호사는 가래를 뽑아내며 소변 줄을 확인했다. 환자의 컨디션에 따라 목욕을 중지시키는 것도 간호사의 임무라고. 좁은 공간에서 북적대며 설치가 끝나자 환자는 말을 하려고 끙끙거렸다.

"알았어요. 알았어. 남성분들 퇴장이오."

비닐 네 귀퉁이를 잡고 침대에서 욕조 그네까지 옮기는 것도 이젠 여성들의 몫이다. 환자는 여전히 중요 부분을 손으로 가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차량안은 목욕용품들로 가득하다.
차량안은 목욕용품들로 가득하다. ⓒ 김재경
"아이구, 누가 공주 아니랄까봐. 이빨 다 빠진 노인네 것 보라고 해도 안 봐"하며 나이든 봉사자들은 얼른 수건을 덮었다. 벽 거울 모퉁이에 걸린 부부의 젊었을 때 흑백사진이 이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뇌성마비 1급 딸(33)까지 봉사자들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었다. 할아버지(70)가 있지만 경제력이 없어 보증금조차 다 까먹고 방세도 1년이나 밀린 상태라고.

앞전 환자의 경우는 부인이 있어서 양호했지만 여성이 누워 있을 때의 상황은 비참했다. 곰팡이와 환자의 몸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가 목욕물의 후끈한 열기에 휘감기며 헉헉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봉사자들은 "어이구 수줍은 19살 공주님, 뭐가 그렇게도 부끄러워요. 이거 발라 드릴게요"하며 파우더로 마무리하고 옷을 입혔다.

"할머니! 이사 가셔도 잘 지내세요. 거기서도 누가 이렇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기도 해 드릴게요"하며 다정히 손을 맞잡는다. "안양이 생각나면 도로 오세요"란 말에 "으, 으응"하고 힘겹게 응대하던 할머니의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이 맺혔다.

목욕을 끝낸 봉사자들의 표정이 밝다.
목욕을 끝낸 봉사자들의 표정이 밝다. ⓒ 김재경
봉사자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그래도 괜찮아요. 삼복더위에 더운물로 씻길 때면 땀이 눈, 코, 입으로 정신없이 들어가요. 그럴 땐 정말 죽을 지경이지요"하며 입을 모았다.

"처음에는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돌렸어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시작해도 토할 것만 같았지요. 집에 갈 때까지 침도 못 삼키겠더라구요."(김혜옥 팀장)
"온 몸에 냄새가 배서 샤워하고 향수까지 뿌렸어요."(유옥민씨)
"다른 봉사는 다 할 수 있어도 이 일은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까지 생각했어요"(황규웅씨)

어디 이뿐이랴! 사연도 가지가지다. 똥싸서 뭉갠 이부자리를 세탁기에 넣자 난리를 치는 치매 환자와 욕조 그네에 앉히기만 하면 똥을 싸는 환자도 있다고. 차량의 물탱크 용량은 아껴 써야 겨우 두 사람이 목욕을 할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물을 갈아야했다.

봉사자들은 교인(여성 40명. 남성 15명)들로 구성되었다. 오전, 오후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하루 4가정씩, 독거노인이나 저소득 80여 세대를 대상으로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눈비가 와도 봉사를 계속 한다고.

김봉식 장로는 "모든 봉사자들이 바쁘지만, 특히 이용현씨는 자신의 사업조차 제쳐두고 봉사대열에 참여합니다. 이럴 때 큰 힘이 되지요"하고 말한다.

김학만 봉사자는 환자들의 이발은 물론 설거지도 하고 고장난 전기를 고치고, 막힌 화장실을 뚫는 등 만능박사로 통한다. 저마다 봉사하는 아름다운 손길을 보며 '음지에 피는 꽃,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란 말을 적잖이 고심해 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안양 볼런티어에도 송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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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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