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신화의 섬이다. ㈜솔트웍스가 한라일보와 손잡고 개발한 '신화의 섬, 디지털제주21'을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디지털제주21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가 소장한 <제주설화집성> <탐라문화> <탐라문화총서> 등에 담긴 300여 종이 넘는 제주도 신화와 전설을 콘텐츠 소재로 삼았다.
작은(?) 섬 하나에 300여 개가 넘는 이야기가 있다면 제주도는 신화의 섬이 맞다. 솔트웍스가 전하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들어 보자.
설문대할망은 제주도의 지형을 만든 거대한 여신이다. 제주도 곳곳에는 할망이 등받침대로 썼다거나 빨래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넘쳐 난다. 할망은 속옷을 만들어 주면 육지를 잇는 다리를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려면 베 100통이 필요했지만 1통이 모자라 결국 다리가 놓이지 못했다는 애절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여느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주요한 신은 남성이다. 특히 세상을 창조한 신인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제주도는 예외다. 이는 삼다도의 한 구성요소인 '제주도 여성'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는 해녀를 비롯한 여성들이 경제를 지탱해 왔다. 해산물을 잡는 물질, 농사일, 땔감 마련, 가사 노동, 육아를 도맡는 등 강인해야 했다. 그 강인함이 설문대할망 같은 여신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고달픈 삶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설문대할망이 오줌을 누자 바닥이 패어 물살이 빨라졌다는 둥, 자신의 키를 자랑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둥 여신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설문대할망 이야기에는 육지에 대한 갈망도 담겨 있다. 육지와 연결되는 것은 섬사람들의 숙원인데 '베 1통' 때문에 좌절됐다는 이야기에는 제주도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과 육지와 고립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체념이 들어 있다.
설문대할망, 문만호 며느리 등 제주도는 여성의 섬이기도
이번에는 '문만호 며느리' 이야기를 살펴 보자.
약 150년 전 구좌면 세화리 문만호가 김녕의 색시를 며느리로 데려왔다. 며느리는 시집을 와서 물을 나르며 동네 청년들이 모여서 '들음돌' 드는 것을 종종 보곤 했다. 들음돌은 큰 것을 두면 반드시 그것을 들 만한 힘센 사람이 난다고 하고, 큰 돌이 있다는 것은 힘을 과시하며 동네 위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문만호의 며느리는 어느 날 물허벅(음료수를 운반할 때 쓰는 용구)을 진 채 동네 총각들이 들지 못한 들음돌을 들어 밭으로 내던졌다. 얼마 후 청년들은 들음돌이 없어진 사실을 알았는데 문만호 며느리가 허벅지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문만호의 귀까지 번졌다. 결국, 남자들이 노는 물건에 여자가 손대는 것이 아니라는 시아버지의 호통에 며느리는 들음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제주 '한라문화제'에서 벌어지는 '들음돌 들기' 경기의 기원이란다. 예전에 제주도에서는 힘센 것이 강조됐던 모양이다. 주목되는 점은 역시 여성의 힘이 세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울타리 속에서 여린 것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를 거쳤음에도,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과 문만호 며느리처럼 힘센 여성들의 일화가 전한다. 이쯤 되면 제주도는 여성의 섬도 된다.
<오돌또기>, '감수광' 등 민요와 노래에도 섬사람들의 애환 담겨
내친 김에 제주도 민요에 얽힌 이야기도 들어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글공부를 좋아하는 김복수라는 총각이 살았다. 김복수는 열심히 공부를 해 과거를 보러 떠났는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안남(安南) 땅에 도착했다. 거기서 유구(琉球)에서 표류해 온 임춘향이라는 처녀와 결혼해 3남 3녀의 자식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에서 사신이 왔다. 사신이 여자인 임춘향의 동행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아서 김복수가 춘향이 오빠 임춘영과 먼저 돌아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 유구로 돌아간 일행은 안남으로 가는 도중 제주도를 발견한 김복수가 내린 후 집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자 그냥 유구를 향해 떠났다.
김복수는 아내와 해후할 기약이 없어지자, 아내가 그리워지면 바닷가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여도 당실 / 연자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오돌또기 저기에도 예쁜 여인이 나타났구나 / 달도 밝은데 내가 앞장서서 놀러 갈거나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여도 당실 / 연자 머리에 달도 밝은데 내가 앞장 설거나)
이는 제주민요로 유명한 <오돌또기>의 배경이 된 '오돌또기와 김복수' 이야기다. 여기에도 섬사람의 애절함이 녹아 있다. 풍랑과 표류 등 제주도를 벗어나려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자연의 험난함과 한 번 헤어지면 다시 해후할 기약이 힘든 섬사람의 비애가 있다.
감수광 감수광 나어떡할렝 감수광 / 설릉사랑 보낸시엥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가십니까 가십니까 나는 어떡하라고 가십니까 / 서러운 사람이 보내드리는 것이니 가시거든 빨리 돌아오세요)
다시 살펴보니 노래 '감수광'에서도 섬사람의 애환이 느껴진다. 육지에 나가는 사람을 영영 못 볼 것 같은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이나, 그래서 가거든 어서 빨리 돌아오라고 보채는 것이 애절하기만 하다.
한라산과 삼다도를 품은 제주도는 신화와 여성의 섬
한편 디지털제주21 콘텐츠에는 눈에 띄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신화와 설화에 따라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비교하고 있는 점이다. 제주도의 '죽으면 못 돌아오는 이유'와 서양의 오르페우스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저승으로 간 영혼이 이승의 인연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오는데, 서양은 저승으로 영혼을 찾아간다. 이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는데도 동양과 서양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도 신화와 설화를 통한 이러한 비교는 디지털제주21 콘텐츠가 주는 또 다른 재미다.
백두산이 아버지의 강인함이라면 한라산은 어머니의 포근함을 지녔다. 마찬가지로 백령도와 강화도가 남성이라면 다도해와 삼다도는 여성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한라산과 삼다도를 품은 제주도는 여성의 감성을 짙게 풍긴다. 적어도 기자가 보기엔 그렇다.
제주도를 여신이 창조하고 여성이 지탱해온 신화의 섬이라고 생각하니 이미지가 무척이나 새롭다. 제주도를 설명할 때 이제는 삼다도와 관광에다가 신화와 여성의 섬을 추가해도 좋을 듯싶다. 제주도가 디지털과 여성의 시대인 21세기를 신화와 여성의 힘으로 섬세하게 열어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올 가을 역시 수많은 신혼부부와 여행객이 한라산과 삼다도를 벗삼아 추억을 만들려고 제주도를 찾을 겁니다. 올인의 촬영지도 방문하겠지요. 거기에 한 가지만 더했으면 합니다. 수많은 제주도 신화와 설화 중에서 한 두 가지만이라도 알고 가십시오. 제주도의 새로운 모습이 보일 겁니다.
솔트웍스 ‘신화의 섬, 디지털제주21’ 콘텐츠 자료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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