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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내사에 나섰다고 한다. <한겨레>의 보도다.

정부가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노무현 대통령이 내사를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정수석실이 8월 중순부터 내사에 착수했으며,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 감독정책 1·2국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내사가 구체적이고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례적인 일이다. 일개 법안 개정 과정에 대해 대통령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금산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건 지난 7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금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웬 뒷북?"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역정을 냈다고 한다. <한겨레>의 7월 7일자 관련 보도는 이렇게 돼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금산법 개정안 논의를 앞두고 갑자기 '일부 부칙조항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계열사 지분 불법보유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다'며 한덕수 재경부 장관과 윤증현 금감위원장에게 설명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이 제대로 설명을 못하자 이정우 정책개획위원장에게 설명하도록 했고, 이 위원장은 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재경부 실무진들이 해명성 설명을 했으나 노 대통령은 '무슨 일 처리를 이렇게 하느냐'고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7월 5일 국무회의장 풍경은 <한겨레> 뿐만 아니라 <문화일보> 등 여러 신문에 의해 보도된 것으로, '스케치' 내용에 별 차이가 없다. 이런 보도에 근거하면, 노 대통령이 금산법 개정안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고, 이에 따라 내사를 지시하게 된 것이란 설명이 가능해진다.

'삼성의 하위파트너'로 비판 받은 참여정부의 재벌개혁은 가능한가?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게 있다. 관계 당국자들 면전에서 역정을 낼 정도로 불만을 갖고 있었다면 왜 국무회의서 금산법 개정안을 의결했는가 하는 의문이 먼저 싹튼다. 이 점에 대해 <한겨레> <문화일보> 등은 이해찬 총리의 '진화' 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해찬 총리가 "국무회의 상정 안건이 부결된 전례가 없다"며 "이미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별도 개정안을 제출하고 참여연대에서 입법청원을 한만큼 국회 심의과정에서 재검토하자"고 제안해 가까스로 금산법 개정안이 의결됐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했다면 의문은 한가지로 모아진다. 노 대통령이 정부의 금산법 개정안에 불같이 화를 낸 시점은 7월 5일,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노 대통령의 지시로 내사에 착수한 시점은 8월 중순이다. 두 행위 간에 40여일의 시차가 발생한다. 이 시차가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관례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개정안을 처리했지만 실무책임자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기에 문책을 작심하고 내사를 지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시간이 너무 뜬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내사에 착수한 시점은 8월 중순,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차일피일 미루며 '뭉갤' 성질의 것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의 지시는 그 직전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이 단순 문책만을 염두에 뒀다면 한 달여를 끌면서 고심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노 대통령의 속내는 뭔가?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터넷 국정홍보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에 실린 한 칼럼. 국정홍보처는 7월 19일 서강대 박호성 교수의 칼럼을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게재했는데 그 내용은 참여정부의 재벌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박 교수는 이 칼럼에서 "최근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조차도 개정 금산법이 삼성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다며 역정을 냈을 정도로 재경부가 제출한 이번 법안은 삼성의 요구를 '받아쓰기' 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뒤 "정부조차도 삼성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한 상황에서 국가경제와 국민을 위해서는 삼성의 지배구조, 경영권 변칙승계, 무노조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참여정부를 "삼성의 하위파트너"라고까지 비난하는 내용을 '국정브리핑'이 아무 말없이 받아준 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7월 5일 국무회의와 8월 중순 내사 착수 사이에 X파일 사건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X파일을 통해 삼성의 불법대선자금 제공 행위가 공개됐고 이 때문에 국민의 공분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거의 같은 시점에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내분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잊혀졌던 '재벌 개혁'이 다시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건희+이재용' 승계구도를 쥔 금산법... 한나라당을 주목해야 한다

이 두 사안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이 재벌 개혁의 고삐를 쥐기로 작심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그래서 <한겨레>도 청와대의 내사 착수 사실을 전하는 기사에서 "정부의 재벌정책 기조도 바뀔 수 있어 주목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방증'에만 기댄 '거친 추론'에 불과하다. 참여정부와 삼성의 '돈독한 관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래서 오는 27일 열리는 노 대통령과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가 주목된다. 어차피 불거진 일, 어떤 식으로든 노 대통령의 언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속내가 뭔지를 가늠하는 작업은 일단 접자. 청와대 내사 착수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곱씹어야 할 '큰 덩어리'가 있다.

청와대조차 재경부의 금산법 개정안에 힘을 실을 생각이 전혀 없다면 이후 상황은 간명해진다. 박영선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상황은 단순해진다. 박 의원 개정안의 핵심은 재벌 금융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 중 5% 초과분은 강제처분토록 한다는 것이다. 박 의원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된다면 재벌그룹에 미칠 여파는 크다. 한 예만 들자. <한겨레>의 기사 한 구절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7.2%, 삼성카드는 삼성애버랜드 주식 25.6%를 각각 보유해 삼성애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애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5% 초과분에 대해 정부가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는 쪽으로 금산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삼성그룹에 대한 이건희 회장 지배력과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구도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된다."

금산법이 박영선 의원 안대로 처리된다면 노 대통령의 속내가 뭐든 상관없이 재벌 개혁에 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길을 둬야 하는 곳은 노 대통령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에 먼저 눈길을 둬야 한다. 정부여당의 방침은 이미 선 것이나 진배없다. 민주노동당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남은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태도 여하에 따라 금산법, 그리고 재벌그룹 삼성의 명운이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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