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반가운 니일리의 메일
반가운 니일리의 메일 ⓒ 한나영
선생님, 니일리예요.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못해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계시면 좋겠는데…. 선생님, 저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저, 오늘은 선생님께 나쁜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해요. 스베이 찬드라를 기억하시죠? 아마 선생님께서도 찬드라의 사진을 갖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그가 한 달 전에 죽었어요. 바로 8월 26일에요. 고혈압 때문에요.

그의 아내는 지난 8월 31일에 찬드라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아들인 아이를 출산했어요. 정말 슬픈 소식이에요. 이제 그 아들은 21일밖에 안 되었어요. 저는 지난 주말에 그의 집에 다녀왔어요. 아들의 이름은 스베이 판하리스예요. 선생님께 이제야 알려드리게 되어 죄송해요.

니일리로부터


가족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먼 나라 이방인의 소식이었지만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찬드라가 누구였던가.

찬드라가 잡지를 오려서 만든 자기 소개서
찬드라가 잡지를 오려서 만든 자기 소개서 ⓒ 한나영
지난 해 7월, 캄보디아에서 온 교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이곳에 썼던 기사 '가나다라... 잠도 안자고 공부해요'의 주인공이 바로 찬드라였다.

찬드라는 바로 그 열두 명의 학생 가운데 가장 진지한 학구파로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었다. 질문도 가장 많았고, 한국어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던 그였다. 또한 그는 갓 결혼해서 온 '새 신랑'으로 아내에게 줄 선물을 내게도 의논했던 자상한 남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그만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사실 죽음이라는 길은 모두가 예외 없이 떠나야 할 인생의 여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 길을 너무나 일찍 떠나 버린 젊은 찬드라. 나는 그를 추억하며 니일리에게 가슴 아픈 답장을 보냈다.

니일리에게

잘 지냈어요? 아직도 니일리를 기억하고 있냐고 내게 물었지요.

"오, 노!" 내가 어떻게 니일리를 잊겠어요? 못 잊어요! 니일리는 정말 예쁘고 영리한 아가씨였어요.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재원답게 한국어도 아주 잘 했고 무엇보다도 기품이 있었어요. 지금 그곳에서는 뭘 가르치고 있나요? 한국말은 잊어 버리지 않았어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니일리, 어떻게 그런 나쁜 소식이 일어난 거죠? 믿을 수 없어요. 찬드라는 아직 젊고 열정적인 학생이었는데 왜 그런 일이…. 사랑하는 아내와 태중의 아이를 두고 어떻게 떠났다는 말예요? 정말 믿을 수 없어요.

니일리, 울고 싶어요. 내가 만약 그곳에 있었다면 찬드라의 집을 방문해서 그의 가족을 위로하고 싶어요. 정말 할 말이 없어요. 너무 슬퍼서….

니일리,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세요. 보고 싶어요. 언제 다시 만나요. 캄보디아든 한국이든 다시 만나길 원해요. 잘 지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 계절을 같이 보냈던 제자의 소식은 분명 반가움 이상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공식적인 나의 첫 외국인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랬던 만큼 반가움은 더욱 컸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렸던 소식이 그만 '부음'으로 오고 말다니…. 뭐라 할 말을 잊었다. 삶이 덧없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찬드라, 젊은 아내와 유복자를 두고 떠나게 되어 당신도 눈을 못 감았겠지요. 그렇지만 이제 눈물과 한숨이 없는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길 바래요. 진정으로 당신을 추모합니다. 평안히 잠들길…."

캄보디아 제자들과 함께 했던 지난해 여름
캄보디아 제자들과 함께 했던 지난해 여름 ⓒ 한나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