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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난처해하는 것은 최찬문 기자였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사실 최 기자 부모님이 직접하시는 송이 밭이기 때문이다. 최 기자의 어른신들이 하시는 송이 밭은 울진군 신림리에 위치하고 있고 차를 타고도 한참 들어간 후 30분을 더 걸어야 하는 곳이다.
“찬문아 비 좀 맞으면 어때. 이런 날은 산행하기도 더 좋다니깐.” 내가 말꼬리를 올린다. 이런 날 속으로 뭐라고 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둘 다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예여 속 없는 놈아’ ‘그래, 나 속 없다’ 김밥을 입에 두 개나 집어넣은 최 기자가 짧은 침묵을 깨고 밥알 하나를 튀기며 말을 꺼냈다.
"비가 와도 GO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얼마나 왔을까? 바퀴가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 같다. 추연만 기자는 그만 내려 걸어서 가잔다. 안 될 말이다. "고만 가자, 고만 가자"는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무렵 우리 둘은 추 기자의 걱정스러운 고충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실 다 왔다. 여기서부터 산길로 30분만 걸으면 기대하던 송이 밭이다.
걸어 올라오는 산판 도로에서 최 기자 아버님과 마주쳤다. 어색하게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니 차 뒤에 실은 송이를 보여주신다. 잘은 모르지만 양이 꽤 되어 보였다.
산판 도로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이 지나갈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우리 일행이 송이 도둑처럼 보였는지 정상 부근에서 내려오는 듯한 한 아줌마가 멀찌감치서 “누구요”하고 묻는다. “아들도 몰라 보네” 최찬문 기자가 대답한다. 최 기자의 어머니셨다.
두 어르신이 송이 밭을 지키는 산중 움막에서 잠시 땀을 식혔다. 이 곳에서 어르신들은 한달 반이 넘도록 송이를 따고 송이를 지키신다고 한다. 전화도 되지 않고 겨우 라디오 전파만 들리는 곳. 이런 곳에서 일주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식자 물을 챙기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이 따기에 들어갔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송이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빗방울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올 송이는 참 애통타게 난다"
송이는 50년쯤 된 소나무 군락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기온이 잘 맞으면 그 이상의 소나무 연령에서도 잘 자라지만 요즘처럼 기후 변화가 심하면 그 생산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이 사실을 어르신을 통해 알았지만 난 내내 고목인 아름들이 소나무 아래만 헤매고 있었다.
송이꽃이 있는 곳은 송이가 반드시 있다고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송이꽃은 송이가 날 시기에 피는 꽃이지 반듯이 송이주변에서 피는 꽃이 아니라고 최 기자가 설명해 준다. 그러고 보니 반드시 송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송이도 선수를 알아보는가 보다. 최 기자의 눈에는 송이가 잘 띄는 것 같은데 나와 추연만 기자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싸리버섯과 능이버섯 같은 잡버섯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따서 배낭에 담았다.
두 시간을 헤매고 겨우 한 봉지 정도 되는 송이를 들고 움막에 들어섰다. 모두가 송이를 따보기는 했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웃으시며 “올 송이는 참 애통타게 난다”고 하시고 올 해는 송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팔구십 년도만 해도 송이가 엄청났지. 여기 보이는 저 능선은 그때만 해도 발끝을 들고 송이를 따야 할 정도였어. 하루에 팔십키로를 따서 지게에 지고 내려갔으니. 근데 지금은 점점 줄어들어 그때 비하면 송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도 오늘은 어르신들이 송이를 많이 따셨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민폐만 끼치는 것만 같다. 그래도 배가 부르도록 먹은 송이두루치기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놀러 오라는 두 분의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발 길을 돌려 하산해야 했다.
자꾸만 자고 가라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두 분이 저 깊은 산속에서 적적하실 것을 생각하니 내려가야 한다고 발길을 돌린 우리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포항에 도착할 무렵 비가 그쳤다. 입 안에서는 여전히 송이향이 배어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두 어른에게 폐만 끼쳐들인 속없는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요. 너무 죄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올 시월의 첫 날에 경험한 아름다운 추억은 아마도 영원할 것입니다. 두 분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요."